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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운용 혁신 미 사립대, 발전기금 벤처 투자로 고수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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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22면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예일대 전설적인 최고 투자 책임자 데이비드 스완슨과 그의 동료 딘 다카하시. [사진 예일대]

예일대 전설적인 최고 투자 책임자 데이비드 스완슨과 그의 동료 딘 다카하시. [사진 예일대]

대학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의 흐름을 만들고 인재를 양성해 사회를 미래로 이끄는 오픈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작동하려면 사람과 자본의 흐름이 다양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대학들은 모두 수십조원 단위의 발전기금을 가진 미국의 사립대학이다. 2021년 6월 말 기준 하버드, 예일의 발전기금은 각각 532억 달러(69조7000억원), 423억 달러(54조8000억원)로 1, 2위다. 이어 서부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가 378억 달러(49조5000억원)로 3위, 프린스턴과 MIT가 각각 377억 달러(49조4000억원), 277억 달러(36조3000억원)로 뒤를 잇는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새로 떠오르는 학문 분야에 대해 적시에 전략적 투자를 하려면 대학에 넓은 안목을 가진 과감한 리더와 사적 자본이 필요하다. 계획에서 투자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공적 자본은 같은 금액이라도 자본의 가치가 떨어진다. 미국 발전기금 상위 5개 대학의 2020~2021학년도 예산에서 발전기금의 기여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버드가 20억 달러로 39%, 예일이 15억 달러로 35%, 스탠퍼드가 13억 달러로 20%, 프린스턴이 14억 달러로 62%, MIT가 8억 달러로 30%다. 예일의 경우 병원과 의과대학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학 예산의 58%를 발전기금이 지원한다.

미 사립대 발전기금 10년 평균 수익률 12%

이들 사립대학들은 매년 발전기금의 5% 정도를 대학 예산으로 쓴다.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발전기금의 수익률이 최소 연 8%는 되어야 원금을 까먹지 않고 키울 수 있다. 발전기금 모금만큼 운용도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으로 증가한 통화량 때문에 자산 가격이 상승하자 지난해 대학 발전기금도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1~5위의 대학들은 전년 대비 33.6%, 40.2%, 40.1%, 46.9%, 55.5% 수익률을 보였다.  올해는 지난해 급등한 자산 가치의 하락이 예상되지만, 미국 주요 사립 대학 발전기금의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12% 내외이다. 1조원 원금이 10년 뒤 3조1000억원이 되는 수익률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대학 발전기금이 이렇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현금성 자산을 많이 보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산의 상당 부분을 ‘비유동성 프리미엄(Illiquidity Premium)’이 있는 자산에 장기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한다. 이른바 예일 발전기금 모델이다.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던 데이비드 스완슨은 1985년 예일대 발전기금의 최고 투자자를 맡았다. 이후 그가 사망한 지난해까지 36년 동안 10억 달러의 예일 발전기금을 423억 달러로 늘렸다. 총 576억 달러의 투자 수익을 만들어 218억 달러를 예일대 운영에 기여했다. 연평균 13.7%, 1달러가 36년 후 103달러가 되는 수익률이다. 스완슨은 “대학의 수준은 발전기금 규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스완슨이 예일 발전기금을 맡았을 때는 주식 60%, 채권 40% 투자 배분이 표준 모델이었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과 해리 마코위츠의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라 선구적으로 헤지 펀드, 사모 펀드, 부동산, 원자재 등에 분산 투자했다. 예일 모델이 성공하자 다른 대학은 물론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자도 따라 하게 됐다. 스탠퍼드, 프린스턴, MIT 등 주요 사립 대학의 발전기금 책임자들은 스완슨 밑에서 훈련을 받은 투자 전문가다. 그는 수익성이 높은 대신 투자 위험도가 높은 사모펀드(Private Equity)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사모펀드의 투자 비중은 2002년 14.4%에서 2018년 33.3%까지 커졌다.

최근 사모펀드 중에서도 신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VC) 투자가 대학 발전기금의 대표적인 비유동성 프리미엄 투자로 자리 잡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바이오, 헬스케어, 기후변화 등 과학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MIT같이 미래를 바꿀 과학기술에 대해 확신을 가진 대학의 기금수익률이 더 높다. MIT의 최근 5년 연평균 수익률은 18.9%,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14.50%로 1~5위의 대학 중 가장 높다. 전기공학자인 라파엘 라이프 MIT 총장은 한 걸음 더 나가 2016년 10월 대학 자체의 VC “더 엔진(The Engine)”을 설립했다. 퀀텀 컴퓨팅, 플라즈마 퓨전 에너지, 바이오 등 ‘터프 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한 펀드다. 2020년 결성한 2억5천만 달러의 2호 펀드에 하버드도 출자했다.

VC 투자는 VC 회사를 운영하는 제너럴파트너(GP)가 연기금, 민간재단, 보험회사 등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유한파트너(LP)와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펀드에 대한 지분 투자 약정을 맺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리콘밸리의 GP들은 대형 기관투자자들 유치와 별도로 투자 자문을 할 수 있는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을 LP로 초청한다. 실리콘밸리 창업 경험이 있는 필자도 10년 전부터 글로벌 기술 동향과 창업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에 특화된 VC 회사들에 소액 LP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중 한 곳이 한국계 미국인 이인식이 공동창업한 버텍스 벤처이다.

입시·재정 규제하는 한국 대학 고민해야

그는 20대 중반이던 1990년대 초 최초의 자바 서버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넷스케이프에 매각했다. 이후 넷스케이프 창업자 마크 안드레센과 넷스케이프가 인수한 다른 벤처 기업의 창업자 벤 호로비츠 등과 함께 라우드클라우드를 공동 창업했다. 안드레센과 호로비츠가 후에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벤처 캐피털 회사는 실리콘밸리의 메이저 VC로 자리 잡았다. 라우드클라우드가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던 2000년대 초반에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필자는 이인식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 실리콘 밸리는 신뢰의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펀드가 결성되면 GP들은 3~4년의 기간 동안 투자 대상 벤처를 선정하고 LP들에게 필요한 투자금을 요청한다. GP들은 벤처 기업이 가지지 못한 경험과 네트워크, 인재들을 채워주는 등 투자한 벤처의 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투자를 주도한 GP가 이사가 되어 경영에 직접 관여한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와 비교해 이런 투자금을 스마트 머니라고 한다.  투자약정금액의 일부는 후속 투자를 위해 남겨두는데 이 때문에 LP의 투자약정금액은 수년에 걸쳐 분할 투자된다. 투자 수익도 벤처 기업이 상장하거나 지분이 매각될 때마다 시간을 두고 회수된다.

벤처 투자에는 항상 실패의 가능성이 따르지만, GP들이 고도의 전문성으로 투자 대상을 선택하고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 의외로 치명적인 실패의 위험은 높지 않다. 특히 혁신기술 벤처의 경우 사업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개발된 기술과 개발팀이 축적한 경험의 가치를 인정받으면 인수합병(M&A)으로 적지 않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국 연기금들은 벤처 캐피털 투자에 대해 투입 자본 대비 최소 3배의 수익률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3억 달러의 펀드로 15~20개의 회사에 투자한 후 상위 10~20%의 투자금이 80~90%의 수익을 내면 하위 10~20% 정도가 망해도 3배의 투자 수익률을 달성하는 데 문제가 없다.

와인에 연도를 붙이는 것처럼 특정 VC 펀드가 시작한 연도를 빈티지(vintage)라고 한다. 최근 5년 내 시작한 빈티지의 펀드들은 세상에 풀린 돈 때문에 과거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가치가 늘어났다. 벤처기업에 돈이 많아지면 더 좋은 인력을 더 많이 유치해 기존 대기업들의 시장을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의 지도·감독을 받는다. 이 법에 따라 모든 대학의 입시, 학사, 재정을 하나의 획일적 틀로 규제하는 한국 고등교육의 전근대적 모습은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사립 대학과 정반대다. 우리에게 이런 후진적 체계를 물려준 일본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일본도 후진적 대학 재정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10조엔(100조원) 규모의 국가 대학 발전기금을 조성했다.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대학에 재정적 자유를 주기 위해 민간 기부금의 1.5배를 대학에 발전기금으로 지원해왔다.

우리나라가 추종자 모드에서 벗어나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없는 과학 기술과 문화의 창조를 대학에서 꿈꾸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선도 대학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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