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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과도한 한국, 일본보다 소득 높아진다고 행복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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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멋진 세계’(니시카와 미와 감독)는 살인죄로 13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한 야쿠자가 출소한 후의 이야기다.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 주인공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는 ‘카타기(堅気)’로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카타기란, 야쿠자의 반대말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즉, 주인공은 야쿠자로서의 과거를 모두 잊고 성실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것을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출소해보니 13년 사이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야쿠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생활보호를 신청하러 구청에 갔더니 담당 공무원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미카미의 직업을 물었다. 조직폭력과 관련한 이력이 있으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카미의 보호자로 함께 구청에 온 남성은 그가 생활보호를 못 받으면 다시 조폭 생활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사실 그건 그렇다. 조폭 생활에서 벗어난 사람이 일자리도 없고 생활보호도 못 받으면 단지 ‘살기 위해’ 다시 조폭이 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야쿠자의 잃어버린 13년, 그 후 책임은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야쿠자의 존재감이 예전에 비해 많이 없어졌다. 옛날 영화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야쿠자들이 자주 등장했지만, 요즘은 영화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1992년 폭력단대책법이 시행된 영향이 크다. 조폭에 대한 규제와 단속을 강화한 것이다.

야쿠자 전성기는 버블 경제 때였던 것 같다. 이때는 부동산과 주식이 오를 대로 오르고, 그걸로 돈을 버는 ‘경제 야쿠자’가 힘을 가졌다. 영화 ‘멋진 세계’의 미카미도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고 하는 걸 보니 이 시절 야쿠자들은 꽤나 화려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카타기로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일자리를 찾는데 고생하고 마음이 약해진 미카미는 결국 알고 지낸 야쿠자를 찾아간다. 하지만 잘 사는 것처럼 보였던 지인은 미카미에게 “지금은 야쿠자로 살아갈 수 없다.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없다”고 알려준다.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일본영화 ‘멋진 세계’는 살인죄로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한 야쿠자의 사회적응기를 다뤘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조폭을 사회에서 쫓아낸 건 좋은데, 쫓겨난 그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멋진 세계’를 볼 때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다. 2020년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개인적으로 그해 본 일본 영화 중 최고로 좋았던 작품이 ‘멋진 세계’였다.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 한국에서 개봉하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더욱이 요즘 ‘한산’ ‘헌트’ 등 한국 영화 대작들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주목 받기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의 평가는 높다.

봉준호 감독은 ‘멋진 세계’를 보고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는 질문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영화를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미카미는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이다.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못 참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어떡하든 성실히 살아보겠다는 미카미를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면서, 미카미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불합리한 일을 보고도 참는 노력을 시작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타협하며 산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멋진 세계인가?’라는 게 니시카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영화에서 미카미에게 가장 멋진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은 청년 장애인이다. 미카미가 겨우 찾은 새로운 직장에서 만난 청년인데 그는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존재다.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생각한 것과 조금 비슷하다. 이상한 건 과연 우영우(박은빈)인가?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우영우가 발견하는 사회의 이상한 점을 못 보고 있는 듯하다. 우영우는 순수한 눈으로 사회를 보기 때문에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 저출산, 비싼 사교육비 영향 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다뤘던 에피소드 중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씨의 이야기. [사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다뤘던 에피소드 중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씨의 이야기. [사진 ENA]

버블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가 초등학생 때인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가 붕괴했고, 당시 10~20대는 후에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았다. 버블 경제 때는 쉽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붕괴 후 부동산과 주식이 폭락하면서 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대출금을 못 갚게 됐다. 90년대는 은행 관계자가 사살당하는 사건도 잇따라 일어났는데 범인이 안 잡힌 것으로 보아 언론에선 아마도 조폭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됐다. 당시의 불길한 분위기가 기억난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의 버블 붕괴와 잃어버린 20년을 언급하는 기사와 방송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아마도 한국의 향후를 생각하기 위한 힌트를 얻고자 하는 듯하다. 한국도 부동산과 주식의 폭락으로 버블 붕괴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일본 때와는 다른 점이 많겠지만, 이웃나라의 실패가 참고 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다뤘던 에피소드 중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씨의 이야기. [사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다뤘던 에피소드 중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씨의 이야기. [사진 ENA]

그런데 ‘잃어버린 20년’ 동안 내가 개인적으로 불행했냐고 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취업 빙하기에 한국으로 건너와 대학원에 다니며 영향을 받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즐거운 10~20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면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과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1인당 GDP가 곧 일본보다 한국이 높아질 거라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이제 교통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가도 한국이 일본보다 비싼 것 같고, 연평균 임금도 일본보다 한국이 높다고 한다. ‘역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됐다. 그런데 자살률은 일본보다 한국이 높고, 출산율은 한국보다 일본이 높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자살률이나 출산율은 어느 정도 행복과 연결돼 있는 수치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 건 과도한 사교육이다. 저출산 배경에도 비싼 사교육비가 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없다고 판단해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과연 그렇게까지 높은 사교육비가 필요한 걸까. 나는 일본이 힘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가 고령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전부터 고령화가 시작됐고 202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9.1%를 차지했다. 한국은 2021년 16.5%였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보면 언젠가 일본보다 심각한 고령화 사회가 올지도 모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구교환)씨가 과도한 사교육 문제를 지적했다.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주장하며 학원행 버스에 탄 초등학생들을 산으로 납치해(?) 같이 놀았던 방구뽕씨의 행동은 범죄였지만, 매일 밤늦게까지 학원에 갇혀 공부하고 저녁도 편의점에서 때우는 초등학생들을 현실에서 해방시켜준 행위에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드라마 속에서 방구뽕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은 우영우뿐이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는 “이상한 사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우영우도, 방구뽕도, ‘멋진 세계’의 전직 야쿠자 미카미도, 미카미가 만난 청년 장애인도 모두가 사회가 존중해야 하는 귀한 존재들이다. 그건 꼭 그들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 세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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