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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 손 떼도 달리고 스톱, 연말 ‘레벨 3’ 자율차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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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14면

자율주행 기술 어디까지 왔나

이르면 4분기 국내에 첫 ‘레벨 3’ 자율주행차가 출시된다. 현대자동차는 레벨 3 자율주행 기술인 HDP(Highway Driving Pilot)가 탑재된 제네시스 대형 세단 G90을 올 12월 출시할 예정이다. HDP 시스템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주행할 때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차간 거리나 차로를 자동으로 유지해준다. 기능 고장 또는 한계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에게 제어권 인수를 요청하고, 운전자가 신변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겨 제어권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주행에 나서기도 한다.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는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을 6개 단계(레벨 0~5)로 분류한다. 그중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의 최소 개입(차선이 불분명하거나 기상이 악화한 등의 경우에만 운전자가 개입)만 필요로 하는 레벨 3부터 ‘완전 자동화’를 뜻하는 레벨 5까지가 자율주행차에 해당한다. 평상시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되는 진정한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조건에서 자동으로 차선과 간격 유지만 가능한, 운전자가 많은 시간 동안 운전대에 손을 대야 하는 레벨 2의 자율주행 기술이 국내외에서 일부 차종에 탑재된 바 있다.

레벨 3~4 수준 무인 택시도 시범 운행

6월부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범 주행에 나선 현대차의 레벨 3~4 수준 자율주행차(‘로보라이드’). [연합뉴스]

6월부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범 주행에 나선 현대차의 레벨 3~4 수준 자율주행차(‘로보라이드’). [연합뉴스]

현재 레벨 3 자율주행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S클래스), 일본 혼다(레전드)의 일부 모델에만 탑재돼 있다. 제네시스 G90 자율주행 모델이 예정대로 나오면 세계 세 번째가 된다. 레벨 2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 테슬라가 가장 앞선 수준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레벨 3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박정국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자동차 업체가 레벨 3 자율주행차 출시에 나서고 있지만 안전성과 가격 등의 이유로 본격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사례는 드물다”며 자사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전략 사업에 9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시장 조사 업체 KPMG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71억 달러(약 9조3000억원)에서 2035년 1조 달러(약 1310조50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국내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 역시 1509억원에서 26조1794억원으로 연평균 40%대 성장이 예상된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레벨 3 자율주행 기술 선점에 적극 뛰어든 이유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 6월부터 서울 강남·서초 등 일부 지역에서 향후 상용화를 염두에 둔 레벨 3~4 수준의 ‘로보라이드’(무인 택시) 시범 운행에도 나섰다. 레벨 4가 되면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이런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가 자유로이 오가려면 기업들의 기술뿐 아니라 국가적인 제도·인프라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국은 일단 선제적인 규제 완화로 첫걸음을 뗐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국내외 각계 의견을 수렴해 2020년 레벨 3 자율주행차의 국내 출시·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안전 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정부는 또 2027년까지 1조원대 예산을 투입해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차 상용화 기반을 다진다는 목표다. 하지만 제도·인프라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자율주행 성능과 직결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람의 눈동자 움직임 등 정밀 데이터를 녹화해 분석하는 게 국내에선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레벨 3 이상 자율주행 기술은 주변 차량 동선뿐 아니라 보행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선제적으로 피하는 등 인공지능의 다양한 상황 분석·대응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축적하려면 최대한 많은 보행자 패턴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전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예컨대 현행법상 보행자의 얼굴이 그대로 들어간 영상으로는 연구를 진행할 수 없어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면 보행자가 눈으로 자동차를 확인해 피하는 과정에 대한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기가 어렵다. 국내 기업이 정작 자율주행차 개발은 해외에서 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미국 업체 앱티브와 합작한 법인 모셔널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 주로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이다. 모셔널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인 택시 시범 서비스를 운영해왔고, 더 많은 양의 데이터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는 다른 지역에서 무인 택시를 운행할 예정이다.

개인정보보호법 탓 데이터 수집 차질

LG전자가 만든 미래형 자율주행차 콘셉트 모델. [뉴스1]

LG전자가 만든 미래형 자율주행차 콘셉트 모델. [뉴스1]

이 같은 자율주행 시범 서비스 지역이 한국은 서울과 광주 등 7곳 일부 구간으로만 한정된 것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나머지 지역 운행은 불법이며 투입되는 차량도 수십 대에 불과하다. 미국과 중국은 1000대 이상의 차량을 시범 주행에 투입, 다양한 돌발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 웨이모는 2020년 기준 3200만 ㎞에 달하는 시범 주행 데이터를 쌓았다. 중국 업체 바이두 역시 지난해까지 2100만 ㎞에 이르는 시범 주행을 했다.

반면 지난해까지 국내 자율주행차 시범 주행 거리는 72만 ㎞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시범 주행은 연구실 안에서 기술을 개발했을 때 놓치는 문제점을 확인하면서 진일보한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첨병 역할을 한다”며 “한국도 자율주행차 시범 주행이 가능한 지역을 대폭 늘려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2~3년 뒤처졌다”면서 “기술력 향상뿐 아니라 실제 도로에서의 자유로운 연구, 자율주행 관련 보험 체계 구축 등 다방면에서의 노력이 체계적으로 더해져야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편에선 자율주행차를 산업 활성화뿐 아니라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 더 엄격한 잣대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레벨 3에 앞서 시장을 달군 레벨 2 자율주행 기술조차 아직 안전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5월까지 미국에서만 총 392건의 교통사고가 레벨 2 자율주행으로 인해 발생했다. 자율주행 상태였는지 여부가 애매한 상황까지 더하면 실제 사고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NHTSA는 추정했다. 뉴욕타임스는 “운전자가 자율주행 기술을 맹신해서 긴장을 늦춰 사고가 난 경우도 많다”며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한 더 많은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보도했다.

레벨 3 자율차 사고 나면, 운전자에게 책임 전가 가능성 커

자동차 운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보험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차의 경우 그간 마땅한 보험 관련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이에 최근 국토교통부와 현대차, 보험 업계와 손해보험협회 등은 ‘레벨 3’ 자율주행차의 첫 국내 출시를 앞두고 보험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국토부는 레벨 3의 자율주행차가 주행 중 사고가 날 때 경우의 수를 크게 넷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운전자가 주행하는 상황 ▶자율주행차가 주행하는 상황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자에게 제어권을 전환하는 상황 ▶자율주행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상황별로 보험도 다르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사고를 낸 주체가 운전자인지, 자율주행 시스템인지 등을 가려서 그에 맞게 적용한다는 얘기다. 이때 보험사는 사고 차량의 자율주행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를 토대로 국토부가 주관하는 자율주행차 사고조사위원회에 분석을 요청, 그 결과에 맞게 보험금 지급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보험 업계는 레벨 3 자율주행차 보험 상품을 내부적으로 준비한 상태이지만 연말부터 실제 자율주행차가 출시되면 그에 맞춰 보험 상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현재 내연기관차의 사고기록장치(EDR)도 차량 결함으로 추정되는 사고 발생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지만, 국과수에서 뚜렷한 차량 문제를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만큼 신뢰도가 높지 않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편집해서 내보내는 정보만 갖고도 차량 결함에 따른 사고인지를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레벨 3의 자율주행차는 (레벨 4 이상과 달리) 운전자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경우든 운전자에게 책임이 전가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운전자들이 불합리하게 떠안을 수 있는 보험의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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