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계가 왜 떨어트렸지” AI면접 잣대 몰라 취준생들 한숨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2호 02면

취업의 새 변수, 깜깜이 AI면접

기업 채용 과정에 AI 전형이 늘고 있다. 사진은 AI역량검사 프로그램. [사진 마이다스인 홈페이지]

기업 채용 과정에 AI 전형이 늘고 있다. 사진은 AI역량검사 프로그램. [사진 마이다스인 홈페이지]

유통업계 영업 직무에 지원해 온 이지희(24)씨는 지금까지 ‘AI(인공지능)면접’을 5번 봤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보통 AI전형은 서류전형 뒤 곧바로 이어진다. 기존 채용 과정으로 보면 1차면접 정도에 해당한다. 이씨는 2번은 AI면접을 통과했지만, 3번은 AI면접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5번의 AI면접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 3번의 불합격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씨는 “AI면접에 응시한 내용이 정확하게 결과에 반영은 되는 것인지, AI면접에서 어떤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최근 취업 준비를 시작한 취업준비생(취준생) 이영현(27)씨도 홈쇼핑 업체에 지원해 지금까지 3번의 AI면접을 치렀다. 그는 “서류전형 발표 후 3일 이내에 응시해야 해 준비기간이 굉장히 빠듯한데다 AI면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며 “(기업들이) 취준생에게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취준생 사이에선 AI면접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전했다. 실제 취준생 모임 인터넷 카페 등에선 “서류 힘들게 통과해도 AI면접만 보면 떨어진다”, “기계가 뭔데 나를 자꾸 떨어트리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카페에 올라오는 AI면접 관련 조언 글은 조회수가 수천 건에서 수만 건에 이르기도 한다.

스터디 카페선 AI면접 합격 팁까지 돌아

AI면접 연습을 위해 마련된 안양시의 AI·VR 면접체험관. [사진 안양시]

AI면접 연습을 위해 마련된 안양시의 AI·VR 면접체험관. [사진 안양시]

기업들이 채용 전형에 AI면접과 AI역량검사를 앞다퉈 도입하면서 하반기 채용 시즌을 앞둔 취준생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채용 전형이 확산한 영향인데 AI면접·역량검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당락을 결정하는 것인지 알려진 게 적기 때문이다. 면접·역량검사를 진행하는 ‘AI’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있고, 그나마 공개된 정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취준생 사이에서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AI역량검사 솔루션 업체인 마이다스아이티에 따르면 AI역량검사를 도입한 기업은 총 630곳에 이른다. 2019년(260곳)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들의 재계약률은 지난해 기준 93%다. AI 전형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얘기다. AI면접 솔루션 업체 관계자도 “도입 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고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에서는 LG전자, 현대기아차, 국민은행, 신한은행, 동국제강 등이 최근 AI 전형을 도입했다.

이 같은 AI 전형은 크게 AI역량검사와 AI면접 두 가지다. AI역량검사는 대개 게임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게임에 대한 반응을 수집하고 무의식적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응답 반응 시간, 실수 회복 패턴, 의사 결정 방향, 집중력 유지, 학습 속도 등을 파악해 해당 직무의 우수 사원 데이터를 토대로 역량을 측정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비대면 채용이 많아지면서 도입했다”며 “AI역량검사를 통해 디지털, 영업 역량을 객관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고 점차 확대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AI면접은 주로 소통역량을 평가한다. 대면 업무가 많은 영업·경영지원·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활용한다.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추론하고, 목소리 높낮이나 말의 휴지(休止), 사용 언어 등을 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AI는 응시자의 친화성이나 성실함, 신뢰도 등과 같은 지표로 점수화해 당락을 결정하거나 평가 결과를 채용담당자에게 전달한다.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기존의 1차면접 대신 AI면접을 활용하고 있는데 사람인 인사 담당자가 파악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눈빛, 키워드 등 응시자의 세부적 부분까지 볼 수 있다”며 “동시에 채용 담당 인력 효율을 높일 수 있고, 면접 결과 데이터가 인재 채용에 도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AI면접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가 없어 취준생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AI면접·역량검사 자체가 낯설다. 지난해 잡코리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녀 취업준비생 873명 중 71.9%가 ‘AI면접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했고, 그 이유로 ‘AI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라는 응답이 과반수(52.1%)를 차지했다.

이영현씨는 “처음에는 AI 상대로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답변도 AI처럼 딱딱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대기업 마케팅 직무에 지원 중인 윤예린(25)씨는 “노트북 카메라를 보며 혼자 응시하는 것보다, 대면 면접에서 말하는 것이 더 전달력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이 모여 있는 스터디 카페에선 AI면접·역량검사 합격 팁까지 돌고 있다. 면접의 경우 ‘화면 똑바로 응시하기’ ‘목소리 크게 내기’ ‘조명 밝게 하기’ ‘최대한 공백 없이 대답하기’ 등이다. 역량검사는 ‘게임에 져도 웃는 표정 짓기’가 필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면접에 대비할 수 있는 학원까지 생겨났다. AI면접 컨설팅이나 강의가 별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서울의 AI면접 대비 스피치 학원 관계자는 “최근 취준생 사이에선 AI면접으로 합격된다, 안 된다가 가장 화두”라며 “대부분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며 학원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대학이나 지역 내 AI면접 체험관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2020년부터 AI면접 체험관을 운영 중인 안양시 관계자는 “AI면접 솔루션 업체로부터 모의면접 쿠폰을 구매해 취준생에게 지원하고 있다”며 “AI면접 체험관은 경제적 상황 등 AI면접을 보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컴퓨터나 스피커, 안정적 와이파이 등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취준생에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업마다 AI면접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반영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윤예린씨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알 수 없어, 해당 전형을 준비하는 것 역시 막연하다”고 말했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서 ‘AI면접의 평가 방식과 진행 방법 등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는 질의에 61.5%가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데 AI면접은 채용 결과에 반영되는 만큼 지원자 입장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국고용정보원 설문조사 결과, AI면접 도입 기업 52개 중 59.6%(31곳)가 면접 결과를 채용에 반영했고, 이 중 24%(6곳)는 ‘당락을 좌우한다’고 답했다. 최병호 고려사이버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1차 필터링을 AI역량검사·면접 전형으로 하기 때문에 누락시키는 기준은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AI자기소개서 평가, AI면접 이 두 가지로 전반적 채용 절차를 다 처리해버리는 기관도 있는데 이럴 경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2020년 한 시민단체는 AI면접을 도입한 공공기관을 상대로 차별 위험은 없는지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진행했다.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해당 기관조차 AI가 출제한 문항이나 적용 기술 등의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김병욱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채용에 AI를 도입한 기업·기관조차 어떤 방식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투명하게 AI 알고리즘에서 뭐가 고려되는지, 산출되는 결과치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I 업체 측은 “평가한 결과지를 기업에서 요청할 경우 취준생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AI 편향·오류 우려, 검증·인증체계 갖춰야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기관이 AI를 인사관리(HR)에 적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광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람 조직에서 HR 관련 현상은 굉장히 복잡해서 AI의 학습에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창배 IAAE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차별과 혐오가 없는 완전무결한 데이터가 되기엔 불가능해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알고리즘을 만드는 인간 역시 주관이 있어 완벽하지 않아 공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2014년부터 개발해 온 AI 채용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겨 폐기한 바 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남자 지원자가 여자 지원자보다 점수가 높게 나오는 오류가 있었는데, 아마존에 따르면 AI의 학습 데이터 자체가 편향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이사장은 “면접·역량검사에 쓰이는 AI는 고위험 AI로 분류해 정부, 학계, 기업이 공동으로 검증·인증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며 “특히 고위험 AI는 정부에서 인증하는 식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I면접 신뢰도를 높이기 전까진 적어도 취준생 입장에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욱 변호사는 “AI면접 결과에 대해 불만이 있더라도 어떤 구제 절차도 없다”며 “외국은 AI기술이 응시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이 큰 경우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치고 인권 영향 평가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선 ‘인공지능 법(AI Act)’이 제안됐다. 법안에선 시험 채점, 직원 채용 등을 돕는 데 활용하는 AI는 ‘고위험’군으로 보고 한 번 더 점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광현 교수는 “지원자들의 (AI면접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객관성을 지원자 눈높이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