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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어 죽었다더라" 의사 때린 유족 전단지…'무죄' 뒤집혔다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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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76]母 사망 뒤 의사 향한 분노의 전단지…명예훼손일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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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다 돌아가신 분의 아들입니다. 의사가 자기가 수술하다 죽은 게 ‘재수가 없어 죽었다’ 이런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사란 사람이 상식 밖의 말을 하는지 병원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결문 발췌)

지난 2017년 11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병원 앞. A씨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뿌렸다가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 “내 돈을 못 갚아서 사기죄로 감방에서 살다 나왔다. 집에서도 포기한 애다. 너희들도 포기해라”

2019년 1월 초순 고등학교 동창 10여명이 참여하는 단체 카카오 채팅방. B씨는 단톡방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유족은 벌금 300만원(1심)에서 벌금 50만원(2심), 고등학교 동창생은 벌금 50만원 선고유예(1·2심) 판단을 받았는데요. 명예훼손을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관련 법률은 

명예훼손죄란 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인격에 대한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과거에 연예인이나 정치인처럼 ‘공인’(公人)을 대상으로 많이 이뤄졌습니다. 이른바 ‘악플’의 사례가 그러했죠. 최근의 명예훼손은 일반인끼리도 잦습니다. 특히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트위터 등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일반인끼리 비방하는 ‘찌라시’ 등이 대표적입니다. ‘알려야 할 공익’과 ‘보호받아야 마땅할 개인의 인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는 법리인 셈입니다.

법원 판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대법원은 모두 ‘무죄’ 취지로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정한 비판마저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이나 민주주의의 균형 잡힌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는 취지입니다.

명예훼손이라는 게 ‘죄’로서 구성되려면 공연성이나 비방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특히 ‘공공의 이익’과 있을 경우 표현의 자유를 보다 넓게 인정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사례를 보시겠습니다. 대법원은 “전단지는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유족으로서 담당 의료인인 피해자와 면담 과정에서 실제 경험한 일과 이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담고 있고, 주요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사망 발생 후 환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감정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서 일탈행위라기보다는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에서 의료인의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공적인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안’과도 연결됩니다. “의료소비자에게 피해자의 자질과 태도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설사 유족으로서 의사에 대한 원망이나 억울함 등 다른 개인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요.

두 번째 대법원 판단 역시 같은 취지입니다. B씨가 채팅방에 올린 것처럼 ‘사기죄로 몇 개월간 수감된 적이 있다’는 건 사실이고, 이들 역시 같은 고등학교 출신 동창들이므로 ‘피해자와 교류 중인 다른 동창생에게 주의를 당부하려는 목적이 포함돼있다’는게 법원의 해석입니다. 실제로 B씨 역시 글의 말미에 “너희들도 포기해라”는 식으로 그러한 목적을 표시했고,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이 사건들은 모두 무죄 취지로 원심법원으로 파기환송됐습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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