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바퀴벌레 들어갔어요"…집 아닌 집에 사는 아이들 눈물

중앙일보

입력 2022.08.19 02:00

업데이트 2022.08.19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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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2일 오전 찾은 서울 관악구 반지하 A군의 집. 냉장고와 신발장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고 바닥은 진흙으로 미끈거렸다. A군은 손수 마련한 가재도구들인데 쓸 수 없게 됐고, 건질 건 물에 젖은 옷과 신발뿐이라며 허탈해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A군의 보금자리가 무방비로 물 폭탄을 맞은 뒤였다. A군은 만 18세를 넘겨 보육원 문을 나선 보호종료아동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보증금 7500만원 중 100만원만 내면 되는 이곳에 한 달 전 둥지를 틀었는데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복구되면 다시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며 “다른 데로 옮기고 싶어도 당장은 형편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최근 폭우로 침수된 서울시 관악구 A군의 집. 지자체에서 대여해준 양수기로 물을 빼내고 있다. 사진 A군 제공.

최근 폭우로 침수된 서울시 관악구 A군의 집. 지자체에서 대여해준 양수기로 물을 빼내고 있다. 사진 A군 제공.

최근 반지하 참사로 보려 하지 않았던 불편한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일몰제가 등장하는 등 반지하에 온 관심이 쏟아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거빈곤이라는 틀에서 폭넓게 취약층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19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등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주거 환경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는 만큼 이런 가구를 우선 지원하는 대책이 시급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아동 중심 주거복지 정책 필요“

한국도시연구소는 ▶지하·옥상 ▶방수·면적 등이 주거기본법에서 정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 ▶축사·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주택 이외 거처 등에 사는 가구를 주거 빈곤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본다. 이런 곳에서 아동을 데리고 사는 집이 전국 57만여 가구(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달한다. 주거 빈곤 아동 가구가 줄고는 있지만, 지난해 지자체와 도시연구소가 공동으로 낸 서울·경기 지역 아동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서울에 12만6058 가구(전체 아동 가구의 15%) , 경기에 10만1657 가구(6.9%) 있다.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반지하 A군 집의 모습. 침수 피해 나흘 뒤였다. 물은 빠졌지만 집안이 엉망이다. 황수연 기자.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반지하 A군 집의 모습. 침수 피해 나흘 뒤였다. 물은 빠졌지만 집안이 엉망이다. 황수연 기자.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최저주거기준 미달 아동가구의 실태와 정책 제언’(2019) 보고서에서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가구는 따뜻하게 자고, 따뜻한 물로 씻는 등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어렵다”라며 “편히 몸을 누이고 쉬어야 하는 주거 공간에서 쉬지 못하고 악조건에서 방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고 했다. 최저주거기준에서는 8세 이상 이성 자녀의 상호분리를 원칙으로 하지만 자녀 간 분리는 물론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을 분리하지 못하는 가구도 많다.

경기도 한 축사 옆에 지은 가건물에서 중·고생 아들 2명, 아내와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B씨도 그렇다. 그는 “샌드위치 패널 집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단열이 잘 안 되고 추위·더위에 약하다”며 “집 내부 공간을 칸막이로 분리하긴 했지만, 문이 없는 형태라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이 많이 불편해한다”고 했다.

경기도 한 축사 옆 가건물 형태에서 두 아들과 사는 B씨 집의 모습. 사진 B씨 제공.

경기도 한 축사 옆 가건물 형태에서 두 아들과 사는 B씨 집의 모습. 사진 B씨 제공.

18일 오후 찾은 초등학생 C군의 비닐하우스 집은 마치 뻘 밭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C군은 경기도 남부의 한 비닐하우스촌에 산다. 4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 70대 할머니와 이곳에서 살게됐다. 집중 호우 열흘가량이 지났지만, 집 앞은 빗물과 흙이 뒤섞여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엉망이었다. 문은 철사를 굽혀 만든 걸쇠로 잠그지만 바람이 불면 덜컹거렸다. 여름에는 더워서 늘 열어둔다. 문을 열면 바로 부엌 공간이 나타났다. 맨바닥이라 질척이는 흙이 그대로 드러났다. 벽면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부엌에서 한단 올라서면 방이다. 나무판으로 단을 높인 뒤 스티로폼과 공사장에서 쓰는 양생포, 장판을 깔고 지낸다. 이곳에서 할머니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숙제도 한다. C군 할머니는 “여름, 겨울 나는 게 지옥 같다”고 했다. 손자는 여름내 에어컨 나오는 지역아동센터 등을 전전하며 보낸다.

C군은 “불 나는 게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몇 년 전 이 마을에서 불이 나 고등학생 등 사망자가 여럿 나와서다. 그나마 이번 호우 때는 다른 집들과 달리 비가 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모기나 바퀴벌레가 수시로 괴롭힌다. 최근 코로나19 탓에 원격수업을 할 때 유난히 힘들었다고 했다. C군은 “집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 학교 컴퓨터실로 갔다”라며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에서 수업 듣는데 힘들었다”고 했다.

류상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지역본부 옹호사업팀 과장은 “집은 아동의 건강, 안전과 직결되는 곳”이라며 “열악한 주거 환경은 침수 등 안전 문제뿐 아니라 아동의 건강한 성장에 장애가 된다. 주거권은 물론 건강권, 교육권, 놀 권리, 사생활권 등을 침해해 아동의 전반적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서울 영등포구 반지하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E씨 집 모습. 사진 E씨 제공.

서울 영등포구 반지하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E씨 집 모습. 사진 E씨 제공.

도시연구소가 2019년 서울에서 아동과 함께 하는 주거 빈곤 245가구를 집중 조사해 낸 보고서에는 주거 환경 탓에 벌어지는 천태만상이 담겨 있다. 용산 한 가구에선 고등학생 자녀가 자다가 바퀴벌레가 귀에 들어가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 조손 가정에서는 곰팡이 때문에 아이 성장판에 균이 들어가 수술을 했다고 한다.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습기와 곰팡이(71%), 비좁음(64.5%), 쥐·바퀴벌레 등 해충(63.3%), 채광·환기(60.8%), 추위와 더위(47.3%) 등이었다. 10가구 중 8곳(75.5%)은 주거 환경으로 인해 아동에게 질병이 생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주로 알레르기·비염(64.9%), 감기·천식(57.8%), 아토피·피부질환(45.4%)을 앓았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주거 빈곤 상태의 가구들도 자녀의 건강 문제를 우려했다.

서울 송파구 반지하에서 2년째 아들, 딸과 사는 D씨는 “아이들이 비염과 아토피가 심하다”라며 “벌레,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열심히 청소하는데도 개선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참고 환경이 나은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고 전했다.

11년 가까이 서울 영등포구 반지하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E씨도 상황이 비슷하다. 그는 “결로가 심해 겨울에도 벽 쪽에 물이 흐르고 곰팡이가 심하다. 지자체 도움으로 도배를 해도 두 세 달밖에 가지 않는다”라며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같은 가격으로 지상층은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첫째 아들은 아토피와 저성장증을 앓았다가 치료했다. 둘째 아들은 조현성 성격장애로 현재 병원에 다닌다. 그는 “아이들이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컴퓨터를 안 하는데도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쓴다”라며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 와 보니 모든 게 집의 영향 아닌가 싶어 그저 미안할 뿐”이라고 말한다.

최은영 소장은 “아동은 주거 정책에서 가장 먼저 챙겼어야 할 대상인데 그간 그러지 못했다. 저출산 대책으로도 신혼부부, 청년에 집중했다”며 “아동이 중심이 된 주거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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