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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수해 막을 빗물터널 6개 무산…박원순, MB식 토건이라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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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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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국민 앞에 사과했다. 누적된 인사 실패가 아니라 수도권 물난리 피해에 대한 사과였다. 예로부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치수 역량이 제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던 이유를 새삼 느끼게 했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내린 일일 강우량 381.5mm는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5년 만에 가장 많았다. 서울의 시간당 최고 강우량 141.5mm는 1942년 8월 5일 기록(118.6mm)을 80년 만에 뛰어넘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폭우·가뭄·폭염·산불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을 뉴노멀로 인식하고, 기존 관행에서 탈피해 획기적인 재난 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수 전문가인 배덕효(62) 한국수자원학회장(세종대 총장)과 1995년부터 27년간 현장 행정 경험을 쌓은 김학진(56) 전 서울시 2부시장(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을 만나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악수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두 사람은 각종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중앙포토]

악수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두 사람은 각종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중앙포토]

2019년 7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19년 7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 피해가 컸다.
 ^배덕효 학회장=이번 수해의 가장 큰 원인은 설계 기준을 초과한 강수량 때문이란 공감대가 있지만, 시설 용량 문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수해를 제대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재 성능 목표에 따른 시설 확충,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전문 인력 양성이 따라야 한다. 홍수 관리를 국가 하천은 환경부가, 지방하천은 지자체가 맡는다. 최근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지방 하천이나 도시 하천에서 발생한다. 도시에서 빗물이 제대로 배수되지 못해 일어나는 도시 홍수 피해가 잦다. 지자체의 홍수 관리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학진 전 부시장=인구가 밀집한 서울은 기상 이변을 예상하고 계획적으로 건설한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2011년엔 우면산 산사태 피해가 컸고, 이번에도 강남 지역에서 유사한 피해가 반복돼 안타깝다. 서울의 지형을 보면 저지대도 있고 구릉지도 있어서 단일 시스템으로 도시 홍수에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가 주도권을 갖고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역 맞춤형 통합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서울의 맨홀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서울의 맨홀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수해 대책을 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수해 대책을 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남은 1조4000억원을 투입하고도 또 물난리를 당했다.
 ^김=과거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추진한 강남 개발은 낮은 지대를 높이는 지반조성을 한 게 아니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진행했다. 강남역 일대는 집중호우로 주변의 물이 몰려들면 침수될 수밖에 없는 분지형 구조다. 강남역 일대 배수 처리 용량이 2011년에는 시간당 65mm였는데 85mm로 확대하는 공사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시간당 100mm가 넘게 내렸다. 그런데 배수 용량을 마냥 늘리기도 어렵다.
 ^배=이번 수해를 보면 정책의 일관성이 제일 큰 문제다. 2011년에 서울시가 첨단 수방 구축 기본계획을 세워 34개 취약지구 대책을 세웠다. 7개 지역은 하수 관로와 빗물 펌프장으로는 수해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해 매년 6000억원 정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선거로 정권이 바뀌고 시장의 생각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빗물 터널이 전지전능한 대책은 아니지만, 달라진 강우 패턴을 반영해 재해에 더 취약한 지역부터 건설해야 한다. 서울시 예산으로 다 할 수 없으면 국토교통부가 좀 나서야 한다.
 -일본 도쿄 같은 대심도 빗물 터널은 왜 한 곳에만 건설했나.
 ^김=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이후 수해 대책의 하나로 (오세훈 당시 시장이) 빗물 터널 7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는데, 11월에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으로) 시장이 바뀌었다. 당초 빗물 터널 발표 때는 타당성 조사와 예산 반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낸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새로 부임한 박 시장이 리뷰했는데, 당시 서울시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토건 사업으로 보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검증 과정이 굉장히 길어져 양천구 신월에만 빗물 터널을 건설했다.
 ^배=당시 박원순 시장이 '토건 공화국 반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강남은 대표적 부촌 지역이고 양천구 신월동은 서민이 많은 지역이라 우선 시급한 곳을 먼저 추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빗물터널 7곳을 발표했지만 후임 박원순 시장은 1곳에만 건설했다.[중앙포토]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빗물터널 7곳을 발표했지만 후임 박원순 시장은 1곳에만 건설했다.[중앙포토]

^김=토건 사업 논란 등 정치적 배경이 좀 있었지만, 빗물 터널 사업비를 다른 데로 돌렸다거나 수해 대비 투자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은 오해다. 예상 침수 피해 규모를 고려할 때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는 빗물 터널 사업이 타당하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결국 광화문과 용산·강동 등은 하수관로 개선, 저류조 확충 등 다른 대안 사업으로 진행했다. 강남은 유역 분리 터널 외에 다른 것은 검토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처럼 시간당 1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 처리 용량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처리 용량을 얼마까지 늘려야 할까.
 ^배=지금까지 시설 기준은 강우 빈도 개념으로 했다. 처음에는 10년에 한 번 오는 비에 대비하다가 30년 빈도(시간당 85mm)로 올렸다. 그런데 이런 빈도는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마련이니 이제는 방재 성능 목표로 가야 한다. 방재 성능을 무한정 올릴 수는 없겠지만, 예컨대 서울은 앞으로 몇 mm까지는 홍수를 반드시 막겠다는 방재 성능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기존 시설을 한꺼번에 바꾸기 어려운데.
 ^배=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에서 순차적으로 바꿔가면 된다. 새로 건설하는 시설은 서울의 경우 95mm에서 110mm 정도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처럼 하루에 140mm 이상의 비가 내리면 비구조적 대책을 써야 한다. 폭우 피크 때의 유량을 줄일 수 있는 분산형 저류조를 운동장이나 공원 지하에 만드는 것이 방법이다.
 -반지하 주택에서 안타까운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김=수해 위험에 노출되고 희생되는 사람들은 주로 취약 계층이다. 반지하 주택 중에서 80%가 고지대에 있다면 20% 정도가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저지대에 있다. 반지하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했다고 곧바로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발상보다는 반지하 문제를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대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순서다.
 ^배=서울에만 20만 가구나 되는 반지하를 하루아침에 다 없앨 수는 없다. 오세훈 시장의 대책은 반지하가 주거공간으로 부적합하니 다른 용도로 쓰도록 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다. 자기 지역의 집값이 내려간다고 반지하 실태 발표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조용히 실태를 조사해 재난에 더 취약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개선하면 된다.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양극화 시대에 맞는 재난 대책은.
 ^배=대체로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신림동 반지하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서초동 지하 주차장과 맨홀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지만,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나눌 일은 아니다. 강남역은 지형적으로 예외적인 곳이고 신림동은 주거지 형태의 문제다. 각각의 원인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김=하수관로든 저류조든 재난 시설 기준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나눠서 차별적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 안전에 더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 좀 더 집중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안전을 복지 차원으로 접근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재난 대비는 국민 복지 차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재난 안전 시스템은 우리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도록 하는 기초적인 복지 시스템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그런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 재난 대비와 예방 투자는 복지 예산처럼 일정하게 의무적으로 이뤄지도록 예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배=2020년에 자치 분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일괄 이양법'이 제정되면서 행정안전부가 도시기반시설 확충에 쓰라고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지방에 내려주고 있다. 그러자 홍수가 나지 않는 지자체는 치수 예산은 뒷전이고 도로·상하수도 건설에 예산 대부분을 쓴다. '물 복지' 차원에서 홍수·가뭄 대책에 일정액을 반드시 쓰도록 용도를 정확히 해줘야 한다.

지난 8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로 차량이 물에 잠긴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 [뉴스1]

지난 8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로 차량이 물에 잠긴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 [뉴스1]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 대응 방향은.
 ^배=과거와 달라진 기상 이변은 기후변화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응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저감해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며 사는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엔 1+1은 3도 될 수 있다. 예전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 지불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김=기후위기 시대에 재난이 반복되는데 우리는 반복해서 금세 잊는다. 이번 물난리도 한 달 못 가서 잊힐 것이다. 재난에 대비한 투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정치인들이 생색내기 어렵다. 그래도 극단적 기상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안전의 기초를 다져가야 한다. 대규모 투자 한번하고, 수해 봉사한다며 사진 한번 찍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은송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115년만의 서울 폭우 피해, 진단과 대책] #치수 전문가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 #2011년 오세훈 시장 사퇴로 박원순 취임하자 수방대책 흔들 #국민 보호할 재난 안전 대책에도 정치 진영 논리 작용했나 #기후위기에 따른 폭우 등 극단적 기상을 '뉴노멀'로 여기고 #대심도 빗물터널 추가 건설하고, 배수관 등 시설 용량 키워야 #양극화 시대에 재난 안전 투자는 복지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