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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훼손, 김해시의 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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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1992년 일본 아오모리현 산나이마루야마(三內丸山)에서 대규모 신석기 유적이 발견됐다. 야구장 공사 중 유적이 발견됐는데 그 범위가 늘어나자 아오모리현은 야구장 건설을 포기했다. 대신 수십년간 정밀 발굴 조사를 통해 현재의 유적공원을 만들었다.

아오모리는 푸르다(靑)는 뜻의 일본말 ‘아오이’와 숲(森)을 말하는 ‘모리’가 합쳐진 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오모리현 9607㎢ 대지 중 삼림이 70%를 차지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공원까지 조성되면서 이곳은 일본인이 교토 다음으로 다시 가고 싶은 관광지로 손꼽고 있고, 외국에서도 이곳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경남 김해에서는 자치단체 ‘무지’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 원형이 훼손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이번에 훼손된 구산동 지석묘는 2006년 구산동 택지지구 개발사업 당시 발굴됐다. 학계에서는 고인돌 상석 무게가 350톤,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묘역 시설이 약 160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2006년 경남 김해시 구산동 택지개발 당시 발견된 지석묘 모습. 이 지석묘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돼 왔다. [사진 김해시]

2006년 경남 김해시 구산동 택지개발 당시 발견된 지석묘 모습. 이 지석묘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돼 왔다. [사진 김해시]

하지만 김해시는 지석묘 규모가 크고, 당시 발굴 기술과 예산 확보 어려움을 들며 다시 흙을 채워 보존해왔다. 그러다 2019년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2020년 12월 복원·정비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 없이 지석묘의 상석(덮개돌) 아래 묘역을 표시하는 박석(바닥돌)을 무단으로 들어내 세척 등을 한 뒤 다시 넣는 정비공사를 하며 원형을 훼손했다.

삼한시대를 지나 고구려·백제·신라가 정립(鼎立)한 삼국시대에도 한반도 남쪽에 가야라는 이름의 나라가 여럿 있었다. 이 중 3~4세기에 가장 큰 세력을 이뤘던 나라가 현재 김해시가 있는 금관가야다. 하지만 금관가야(532년)와 대가야(562년)마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번에 훼손된 고인돌은 금관가야 탄생의 비밀을 풀 열쇠로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지시하면서 이 고인돌의 박석 아래 묻혀 있던 청동기시대 문화층(文化層·과거 문화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지층)도 본격적인 조명이 가능해졌고, 국가사적 지정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고인돌 원형이 훼손되면서 문화재 가치와 국가사적 지정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가야 왕도’라 불리며 가야사 복원 전담 부서까지 있는 김해시 행정이 이런 수준인데 다른 자치단체 문화재 발굴과 복원의 현주소는 어떨지 우려가 크다. 김해시의 잘잘못도 가려야겠지만 이번 사례를 문화재 복원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 다른 참극을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