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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큐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한국에 25년 만에 개봉해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1997)는 기괴한 범죄영화이자,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자로 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죽이고 사체에 X자 모양의 상처를 남긴다는 ‘불특정 연쇄살인극’이다. 최면을 통해 살인을 사주한다는 설정으로 공포를 만들어낸다.

구로사와 감독은 툭 하고 내던지듯, 카메라를 고정한 롱 숏으로 살인 현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무심한 앵글은, 그 어떤 스타일보다 효율적이다. 관객이 이 영화의 살인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에도 롱 숏이 주는 긴장감은 대단하다.

큐어

큐어

그중 하나는 파출소 장면이다. 오전 시간대, 두 명의 경찰이 문 앞에 있다. 한 명은 업무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또 한 명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이때 후자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 등 뒤에서 동료 경찰관에게 쏜다. 그리곤 사무실로 들어간다. 1분여 동안 롱 테이크와 롱 숏으로 담아낸 살인의 풍경이다.

이 장면이 충격적인 건 거리를 두고 고정된 카메라와 자연광으로 담아낸 감독의 방식 때문이다. 관객은 백주에 벌어진 너무나 무심한 죽음을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듯 대면해야 한다. 일상을 건조하게 담아내는 데 주로 사용되는 롱 숏은 ‘큐어’에서 관객을 ‘현실 살인’의 목격자로 만든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