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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돌아왔다, 신라의 달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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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경주의 대표 야간 관광 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이 3년 만에 재개됐다. 지난 13일 첨성대 앞에 설치된 달 모형 포토존 앞에서 선덕여왕 연기자 손미영씨가 포즈를 취했다, 참가자들도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경주의 대표 야간 관광 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이 3년 만에 재개됐다. 지난 13일 첨성대 앞에 설치된 달 모형 포토존 앞에서 선덕여왕 연기자 손미영씨가 포즈를 취했다, 참가자들도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13일 저녁 경북 경주. 궂은 날씨에도 첨성대 앞은 신라의 달밤을 맞으러 나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첨성대 왼쪽 어귀 천막에 긴 줄이 있었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예닐곱 명이 앉아 백등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마침 비가 그쳤다. 참가자들이 건전지 촛불을 넣은 백등을 들고 첨성대 앞에 모였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신라달빛기행’이 재개되는 순간이다. 달 없는 경주의 밤이었지만, 달빛기행에 나선 참가자들의 얼굴은 달처럼 밝았다.

남산자락서 경주 시내로

신라달빛기행은 경주 문화지킴이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이 1994년 만든 야간 탐방 프로그램이다. 그땐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밤 나들이를 다녔다. 종이컵 안에 작은 촛불을 넣고 남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석불을 보러 다녔다. 그 시절 달빛 기행은 1년에 한두 번, 보름달이 유난히 환히 뜨는 밤에 진행했다.

은은한 조명이 들어온 첨성대.

은은한 조명이 들어온 첨성대.

2003년 즈음해 달빛기행은 경주 시내로 내려왔다. 분황사·불국사·서악서원·첨성대 등에서 행사를 치렀다. 해가 지면 경주 관광도 끝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경 명소가 된 월지(그때는 안압지)를 비롯한 경주 시내 문화유적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였다.

달빛기행은 고유명사다. 신라문화원이 2005년 달빛기행 상표권을 등록했다.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달빛기행이란 이름으로 야간 투어를 진행한다. 2007년 문화재청이 ‘창덕궁 달빛기행’을 시작하면서 달빛기행이 보통명사처럼 퍼졌기 때문이다. 진병길 원장은 “문화재 활용이라는 문화재청의 뜻을 존중해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며 “다만 원조가 경주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까지 다섯 차례 진행

지난 13일 오후 10시쯤 경주의 대표 야경 명소 월정교 앞 징검다리에서 백등을 들고 있는 달빛기행 참가자들. 달빛기행 참가자에게는 경주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이 제작한 백등이 제공된다.

지난 13일 오후 10시쯤 경주의 대표 야경 명소 월정교 앞 징검다리에서 백등을 들고 있는 달빛기행 참가자들. 달빛기행 참가자에게는 경주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이 제작한 백등이 제공된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 신라달빛기행은 해마다 6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 매달 기행이 진행됐고, 행사도 규모가 컸다. 월정교·월성 등에 조명이 들어오고 늦은 밤에도 황리단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경주는 이제 해가 진 뒤에 더 화려한 도시가 됐다. 그 맨 앞에 신라달빛기행이 있었다.

3년 만에 재개한 신라달빛기행은 모두 다섯 차례 진행된다. 7월 30일과 8월 13일 행사는 끝났고, 9월 3일과 17일, 10월 8일 행사만 남았다. 참가비는 1만원. 나머지 비용은 행사 예산으로 메꾼다.

백등 만들기 체험을 하는 아이들.

백등 만들기 체험을 하는 아이들.

기행은 오후 6시 시작한다. 첨성대 옆 천막에서 백등을 받는다. 이어 백등에 손수 그림을 그려 나만의 백등을 만든다. 참가자들은 20~40명 팀을 이뤄 움직인다. 팀마다 해설사가 동행한다. 특히 이날은 외국인 청년이 많이 보였다. 경북 김천의 우리문화돋움터 회원 36명이 참가했는데, 이 중에 유학생이 여남은 명이었다.

경주 월성 해자에 최근 조명이 설치됐다.

경주 월성 해자에 최근 조명이 설치됐다.

첨성대에서 시작한 기행은, 계림과 월성을 거쳐 월정교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모두 야경이 아름다운 곳들이다. 월성은 최근 해자에 조명을 설치한 신흥 야경 명소고, 월성 앞 꽃밭에도 은은한 조명이 들어왔다. 사실 달빛기행의 하이라이트는 인증 사진 찍기다. 선덕여왕 복장을 갖춘 연기자 손미영씨가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올해는 첨성대 옆과 계림에 달 모형 포토존을 설치했다. 달빛기행 참가자가 아니어도 포토존 앞에 저녁 내내 긴 줄이 이어졌다.

달빛기행 마지막 행사. 공연단과 참가자가 어울려 강강술래를 한다.

달빛기행 마지막 행사. 공연단과 참가자가 어울려 강강술래를 한다.

기행에서 돌아오면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단과 참가자가 강강술래 뒤풀이까지 마치면 오후 10시쯤이 된다. 박주연 해설사는 “참가자들이 해설을 끝까지 귀담아들었다”고 말했다. 신라의 달밤은 화려하고 유익했다.

문화·역사와 밤 나들이…부산·군산·공주·강릉 야행

강릉 문화재야행을 즐기는 외국인의 모습.

강릉 문화재야행을 즐기는 외국인의 모습.

문화재 야행은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함께 여는 야간 투어 행사다. 밤 나들이를 즐기며 문화와 역사도 배울 수 있어 가족여행에 제격이다. 8~9월 진행되는 야행 네 개를 소개한다.

부산에서는 8월 19~20일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을 개최한다. 한국전쟁 당시 1023일간 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의 면면을 살피며 시간여행을 즐긴다. 임시수도 정부청사, 부산전차, 영도대교 등지에서 피란민의 생활상을 엿본다. 25~27일 열리는 군산 문화재 야행은 군산세관, 조선은행 등이 있는 군산 내항과 원도심 일원에서 진행된다. 조선은행 뒤편 무대에서 클래식, 전통공연을 감상하고 군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볼 수 있다.

9월 2~4일 열리는 공주 문화재 야행은 1890~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원도심, 제민천 일원에서 근대 공주의 면면을 살피고 야간 조명으로 정취를 더한 밤길을 산책한다. 강릉에서는 9월 29일~10월 1일 문화재 야행이 열린다. 대도호부 관아, 서부시장 일원이 주 무대다. 농악 공연부터 버스킹, 먹거리 장터까지 오감이 즐거운 행사가 이어진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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