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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곳간 비고, 단기 빚 늘고…대외지급능력 건전성 지표 악화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대외지급능력과 외채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악화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외채 비율은 2012년 유럽재정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나빠졌다. 나라 곳간에 쌓인 외화는 줄어든 반면, 빨리 갚아야 하는 빚이 늘었다는 의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채 건전성 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한국의 6월 말 기준 대외채무는 3월 말보다 77억 달러가 늘어난 6620억 달러로 집계됐다.사진은 11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한국의 6월 말 기준 대외채무는 3월 말보다 77억 달러가 늘어난 6620억 달러로 집계됐다.사진은 11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6월 말 기준 대외채무는 지난 3월 말보다 79억 달러 늘어난 6620억 달러로 집계됐다. 대외채무액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단기외채(1838억 달러)는 3월 말보다 89억 달러 늘었다. 반면 만기가 1년이 넘는 장기외채(4782억 달러)는 3월 말보다 10억 달러 줄었다.

대외지급능력과 외채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일제히 악화했다. 6월 말 기준 단기외채 비율(41.9%)은 지난 3월 말보다 3.7%포인트 올랐다. 지난 2012년 2분기(45.6%)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해당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도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단기외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상승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단기외채 비율(단기 외채/준비 자산)이 높아진 건 분모인 준비자산(외환보유액·4383억 달러)이 195억 달러 감소한 반면, 분자인 단기 외채가 89억 달러 늘어난 영향이다. 대외채무 중 만기 1년 이하인 단기외채의 비중(27.8%)도 3월말 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유복근 한은 경제통계국 국외투자통계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해외직접 투자 확대로 늘어날 국내 기업의 외화자금 수요에 대응해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이 단기 차입금을 늘렸다”며 “달러 강세로 인한 기타 통화 외화 자산의 달러 환산액 감소에 따른 외환보유액 감소도 단기외채 비율 상승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은 외채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단기외채 비율은 10년 평균(33.8%)보다 높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78.4%)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일반은행도 외채 상환 능력이 충분하고, 최근 건전성 악화 배경이 외국인 자본 유출이 아닌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에 따른 달러 외 기타 통화 표시 자산의 평가액 감소 등 비거래요인이 상당하다는 것도 자신감의 이유다.

기재부는 “외채 건전성은 과거 추이와 상환 능력, 세부 원인 등을 종합 고려할 때 여전히 양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은 유복근 팀장도 “단기외채 비율은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대외지급능력은 양호하다”며 “다만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3분기 지표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럼에도 단기외채 증가세는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일 공개된 7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도 이런 우려가 담겼다.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최근 단기외채가 증가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원자재가격 상승과 수출여건 악화 등으로 기업의 외화 수요가 늘면서 외채 증가압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금통위원도 “최근에는 (외화) 순유출이 지속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세계금융위기 직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타나면서 단기외채가 증가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이후 금융위기 상황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하는 계기가 된 만큼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를 키우는 건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이다. 특히 커지는 무역수지 적자는 이러한 걱정과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10일까지 올해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29억3000만 달러(약 29조9000억원)로, 이미 역대 최대 적자 기록(1996년 206억 달러)을 넘어섰다.

외환보유액도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4386억1000만 달러)로 지난해 말(4631억2000만 달러)보다 245억1000만 달러가 감소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6월 94억3000만 달러가 줄어들며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원자재 값 상승과 강달러로 인한 수입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판 것 등이 외환보유액 감소의 배경이다. 한국은 올해 1분기 외환시장에서 83억1100만 달러를 내다 팔았다. 다만 7월에는 외환보유액이 3억3000만 달러가 늘어나,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오정근 한국 금융 ICT 융합학회장은 “한국은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미국만큼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는 만큼 외국인 자본유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데다 무역수지 적자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외채 건전성 등의 문제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재정 건전성을 미리 확보하고, 관련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6월 말 기준 대외금융자산(2조1235억 달러)은 지난 3월 말보다 658억 달러 감소했다. 2020년 1분기 이후 2년 3개월 만의 감소 전환이다. 미국 주식시장 하락 등이 주된 원인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국내 증권에 투자한 자금인 대외금융부채(1조3794억 달러)로 1139억 달러가 줄었다. 달러 강세로 원화 표시 자산의 평가액이 하락한 영향이다. 대외금융부채가 대외금융자산보다 더 큰 폭으로 줄며 순대외금융자산(7441억 달러)은 전분기 대비 481억 달러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채 건전성 지표가 나빠진 가운데 원화가치가 약세 속 지난 6월 시작된 '1달러=1300원' 시대도 이어지고 있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10.4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320.7원까지 밀렸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320원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달 15일 이후 한달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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