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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OU=우리'도 이남자 작품..."굿 아이디어 '곱씹기'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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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광고는 천대받는 미디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미디어다.”

광고대행사 TBWA의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말입니다. 광고는 대중의 일상을 통해 퍼져 나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되니 누적 효과도 큽니다. 그만큼 광고 카피는 ‘시대의 문장’이 될 가능성이 높죠.

이런 카피는 어떻게 만들까요? 21년 차 카피라이터인 유 디렉터는 “한 줄의 카피를 쓰기 위해 수많은 회의와 분석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밤새 책상 앞에서 고민하다 순간적 영감을 얻어, 일필휘지 써내려갈 거란 예상이 무색했습니다.

유 디렉터를 지난달 만나 ‘카피라이터가 일하는 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브랜드가 지닌 문제를 언어로 해결하는 사람”, 곧 ‘브랜드의 의사(醫師)’로 정의했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카피라이터가 일하는 법’ 2화의 일부입니다.

 서울 강남의 TBWA 사무실에서 만난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인, 최지훈

서울 강남의 TBWA 사무실에서 만난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인, 최지훈

멋진 덩크슛을 할 수도 있지만, 실수 없이 레이업만 던져도 괜찮아요. 완벽한 쇼가 필요한 게 아니라 준비된 것들을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스필오버’와 ‘곱씹기’의 힘

Q.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는 어떻게 다르죠?
한 선배가 ‘카피라이터가 피아니스트라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했던 게 생각나요. 카피라이터는 광고 안에서 문장을 책임져요. 좋은 각도의 문장을 갖고 와서 디테일을 끝까지 만드는 작업을 하죠. CD는 전체를 총괄하고 판단해요. 피아노 소리는 어떻고, 바이올린 박자는 어떤지 각 부분을 챙기고 전반적인 흐름과 연결까지 살펴야 하죠.
카피라이터 일을 오래 해 오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으니 전 연주자에서 지휘자가 된 거죠. 아직도 피아노 앞에 서면 두근두근해요.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싶고, 피아노 치는 게 좋죠.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해야 하는 부분은 스태프와 함께 오케스트라 전체의 그림을 그려 나가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할까, 시간과 예산 등 정해진 리소스 안에서 어떻게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팀의 스케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까 등을 고민하죠.

Q. 그간 어떤 카피를 작업했나요?  
시디즈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비타500 ‘착한 드링크’, SBS ‘함께 만드는 기쁨’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등을 작업했어요. 특히 시디즈는 벌써 9년째 캠페인을 같이 하고 있어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관계가 갑을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작업으로는 가수 아이유 씨가 출연한 우리금융그룹 광고 ‘I+YOU=우리’도 있어요.

Q. 20년 넘게 일하며 ‘아이디어 샘이 마른다’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하나요?  

스퀴즈 아웃(Squeeze out)이 아닌 스필오버(Spillover) 방식으로 일하려고 해요.  

『책은 도끼다』 저자이자 제 사수인 박웅현 CD 님이 사용한 표현인데요.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일이 되면 나도 모르게 아웃풋을 짜낼 궁리만 하게 돼요. 하지만 그런 ‘스퀴즈 아웃(Squeeze out)’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정작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고갈되어버리죠. 그래서 반대로, 많이 채워 넣어서 흘러넘치게 하는 방식을 추천해요.
일단 열심히 재료를 채워 넣다 보면 언젠가 흘러넘쳐요. 짜낼 시기와 기회는 분명 오니까, 그때를 위해 쌓아두는 거죠. 그래서인지 또래 연차의 크리에이터들보다 확실히 번아웃이 적어요.
그렇다고 ‘오늘은 영감을 얻기 위해 넷플릭스를 봐야겠다’ 같은 식으로 억지로 하는 건 아니에요. 자연스레 접하는 자극에 관심을 가지고,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 마다치 않고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어보죠.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지인들과 시간도 자주 가지고요.

Q.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떤 형태로든 텍스트는 다 좋아하고요. 읽는 걸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곱씹기’를 잘하려고 노력해요.
좋은 문장을 보거나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 메모해둬요.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위기 상황에 훑어보죠. 분명 이유가 있어서 적어뒀을 테니까요. 그렇게 곱씹기를 하다 보면 내 근력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하는 연습이랄까요.
멋진 것만 쓰여 있진 않아요. 가고 싶은 맛집, 아들의 말버릇 등 소소한 것들도 많이 적어두죠. 잡아두면 나중에 지우면 되는데,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지신이 일상에서 기록한 메모를 보여주는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인, 최지훈

지신이 일상에서 기록한 메모를 보여주는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인, 최지훈

Q.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기울이는 노력이 있나요?

후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려고 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멀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감 좋은 후배들과 식사도 자주 하고요. 그 친구들이 어디 갔다거나 뭐 했다고 하면 찾아봐요.
SNS도 의지를 들여서 챙겨봐요. SNS는 일종의 ‘겹눈’ 같아요. 잠자리의 눈이 겹눈인데, 잠자리는 대상을 세밀하게 파악하진 못해도, 움직임을 잘 느낀대요. SNS도 그렇죠. 정확한 정보를 얻긴 어렵지만, 수많은 눈을 통해 트렌드를 읽기 좋은 곳이에요.

광고는 ‘시대의 문장’이다  

Q. 카피라이터의 회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첫 회의는 ‘빈 머리 회의’를 합니다. 부담 없이, 제한 없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회의죠. 두 번째 회의 때부터 각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데요. 이때 아이디어 싹을 섣불리 자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빨리 좁히거나 거르지 않으려고 하죠. 제가 보지 못한 좋은 포인트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세 번째 회의부터 조금씩 정리해요. 처음엔 여지를 많이 주고 나중에 정리하는 스타일이에요.

Q. 평가하기도 어려울 듯한데요.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사적으로’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칭찬은 스치듯 하더라도 꼭 다 같이 모였을 때 하고, 보완해야 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야기하죠.
사실 별도의 평가(피드백)를 하지 않아도 내 아이디어가 별로인 경우는 주변의 반응이나 분위기를 보면 딱 알 수 있어요. 회의실 사람들 목소리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별로인 아이디어에 대해서 굳이 평가하지 않는 편이고요.
연차가 낮은 친구들의 아이디어가 하나도 채택되지 않은 경우는 특별히 신경 써서 알려주려고 해요. “이거 좋았는데, 왜 고르지 않았냐면…” 하면서 설명하죠. 감정 관리를 같이하는 거예요.

Q. 초년생 때 받았던 평가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초년생 때는 선배들이 어떤 말을 해도 그게 다 진리 같잖아요. 제 의견을 내세우기엔 사수들의 글쓰기 능력이 당연히 훨씬 뛰어났고요. ‘저 사람은 천재인가, 어떻게 저렇게 쓰지’ 하는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조언을 무조건 다 받아들이려고 했죠.
그런데 제가 책임자 자리에 앉고 나니 좀 다르게 보여요. 물론 리더의 결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를 수 있잖아요. 평가를 무작정 반영하기보단 잘 참고하면서 내 것을 발산하는 게 중요하구나 싶어요.

유병욱 디렉터는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사적으로’란 원칙으로 지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폴인, 최지훈

유병욱 디렉터는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사적으로’란 원칙으로 지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폴인, 최지훈


Q. 사업을 따내기 위해 발표를 할 일도 많겠죠.  
사실 저는 말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예전엔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됐고요. 난 카피는 잘 써도 CD는 못 하겠다,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죠.
그러다 언젠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한두 페이지 정도 지나니까 아무도 제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아이디어가 좋으면 되는 거지, 내가 말을 잘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단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만든 게 ‘레이업슛’ 이론이에요. 현장에서 멋진 덩크슛을 할 수도 있지만, 실수 없이 레이업슛만 던져도 괜찮단 거죠. 완벽한 쇼가 필요한 게 아니라 준비된 것들을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물 좀 마시겠습니다” 하면서 일부러 리듬을 좀 깨는 것도 요령이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참석자들이 슬라이드 한장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니까요. 완벽하게 15분을 장악하는 것보다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Q. 카피라이터로서 철학이나 소명 의식이 있다면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문장을 쓴다는 자부심을 갖고, 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고 싶어요.  

흔히들 광고는 가장 천대받는 미디어라고 하잖아요. 물건을 파는 매체이고, 휘발되기도 쉽고요. 하지만 누적의 관점에서 보면 광고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일 수 있어요. 영화는 두 시간이고, 드라마는 16부작인데, 광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잖아요. 반복되는 만큼 많이 누적될 수 있고, 그만큼 대중적 현상이 될 가능성이 커져요. 시대의 문장이 될 확률도 높죠.
이 자부심을 잃지 않고 싶어요. 저는 문장으로 공을 차는 사람이고, 제가 뛰는 그라운드는 가능성이 큰 곳이라는 자부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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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만든 제품과 서비스,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 홍보하고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강렬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카피라이터는 어떻게 일하고,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까요? 영감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카피라이터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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