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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축구 7부→1부...한국판 제이미 바디 꿈꾸는 '축구 미생' 김범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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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선수로 시작해 1부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김범수.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7부 선수로 시작해 1부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김범수.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올 시즌 후반기 프로축구에는 '한국판 제이미 바디'로 불리는 선수가 등장했다. 조기축구 무명 선수로 시작해 4부리그를 거쳐 국내 최고 무대인 K리그1(1부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공격수 김범수다. 잉글랜드 8부리그 출신이었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과 우승을 차지한 제이미 바디(레스터 시티)와 닮았다. 최근 만난 김범수는 "팀과 리그 적응을 마쳤다. 지금부터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범수의 축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대학 진학과 프로 입단에 실패한 그는 2019년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육군 제6군단 예하 제5기갑여단에서 보병으로 군복무하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그는 장갑차를 타고 훈련하면서도 프로의 꿈을 놓지 않았다. 일과가 끝난 뒤 혼자 연병장에 나가 축구했다. 선수들이 뛰는 천연잔디 경기장과는 거리가 먼 흙구장이었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다. 김범수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축구 인생을 접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축구가 너무 좋았다. 힘든 군생활 중에도 '전역 후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잉글랜드 8부 출신으로 EPL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 제이미 바디. AP=연합뉴스

잉글랜드 8부 출신으로 EPL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 제이미 바디. AP=연합뉴스

2021년 4월 전역한 그는 곧바로 축구를 시작했다. 동호인 리그인 7부리그 팀 동두천 씨티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축구 미생(未生)' 김범수는 언젠가 이룰 '완생'을 꿈꿨다. 이후 4부리그 서울중랑축구단으로 옮겼다. 그는 그곳에도 돋보였다. 주무기인 빠른 돌파와 과감한 드리블은 프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고 시속이 34.4㎞다. 프로에서도 정상급 스피드다. 그의 재능은 제주 구단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지난 6월 제주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으면서 K리거의 꿈이 이뤄졌다. 7부에서 1부까지 1년여 만에 도달하는 고속 승진이었다. 김범수는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주민규, 윤빛가람, 구자철 등 TV 중계에서만 보던 스타 선수들이 옆에서 뛰게 될 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저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김범수는 제주에서도 빠르게 적응했다. 지난달 2일 2022시즌 K리그1 19라운드 FC서울과의 홈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제주 입단 3경기 만이다. 이후 남기일 제주 감독이 중용하는 공격 카드로 자리 잡고 8경기에 나섰다. 김범수는 "기적의 스토리가 K리그1 팀 입단으로 끝나는 건 싫다. 공격수로 뛰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것이 팀에 보탬이 되는 길이다. 더 많은 골과 득점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주 골잡이 주민규는 김범수의 멘토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 골잡이 주민규는 김범수의 멘토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올 시즌 리그 득점 선두(14골)를 달리는 주민규는 김범수의 멘토이자 '믿는 구석'이다. 주민규 역시 '축구 흙수저' 출신이라서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주민규는 연봉 2000만원에 당시 2부 고양HiFC(해체) 연습생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빈 그는 결국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김범수는 "연습생 성공 신화를 쓴 민규 형이 먼저 말을 자주 건다. '지금 어떤 기분인 줄 안다'면서 격려도 해준다"고 말했다.

김범수의 꿈은 '한국판 제이미 바디'다. 그는 "전체 시즌을 뛸 수 있다면 공격 포인트 10개를 목표로 했을 텐데 후반기부터 합류했으니 공격 포인트 5개에 도전하겠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반드시 잡고, 그라운드에서 내 꿈을 이루고 싶다"며 "제이미 바디처럼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서 성공한 축구 미생이 되고 싶다. 실력을 인정받아 연봉도 많이 받고 효도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그라운드에서 좌절했던 많은 선수가 나를 보고 다시 뛸 수 있길 바란다.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불사르면 아마추어로 시작해도 프로가 될 수 있다. 기적의 50% 이상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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