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잠수함 900억 수상한 손실…최종 결재자는 박두선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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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우조선해양이 인도네시아와 맺은 1조 1620억원 규모 2차 잠수함 사업에서 약 900억 규모 자재를 선발주하고 그중 상당 금액을 사실상 손실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사업을 주도한 박두선 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비롯한 누구도 경영상 실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 "감사와 진상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1400t급 잠수함 3척 가운데 2번함 인도식을 2018년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가졌다. 이 잠수함은 독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대우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한 국내 최초 수출형 잠수함으로,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2차 계약을 한 잠수함도 이와 같은 급이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1400t급 잠수함 3척 가운데 2번함 인도식을 2018년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가졌다. 이 잠수함은 독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대우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한 국내 최초 수출형 잠수함으로,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2차 계약을 한 잠수함도 이와 같은 급이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부품 먼저 발주' 최종 결재자는 박두선 사장

900억대 선발주 계약 가운데 독일 지멘스사와 맺은 780억대 전동추진기 계약의 규모가 가장 크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이 1400t급 잠수함 건조를 위해 지멘스사에 선발주한 전동추진기는 독일 현지에서 제작 및 시험을 마치고 올해 10월 국내에 입고될 예정이다. 하지만 2차 사업은 인도네시아가 선급금을 내지 않아 3년째 제자리걸음인 탓에 전동추진기의 쓰임새가 마땅치 않은 상태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산업은행 보고서(‘대우조선해양의 인도네시아 잠수함 추진 전동기 구매 관련 진행 경과 및 현재 상황’)에 따르면, 추진전동기 구매 계약의 최종 결재자는 당시 조선소장 겸 특수선사업본부장이었던 박 사장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우조선해양 내부 관계자는 "당시 특수선사업부에 눈에 띄는 수주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박 사장이 의욕을 냈다"며 "결과적으로 무리한 발주였다"고 말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지난달 7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오션프라자에서 하청노조 파업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지난달 7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오션프라자에서 하청노조 파업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사장, 문재인 정부 '알박기 인사' 논란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영전한 박두선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알박기 인사'로 도마 위에 오른 인물이다.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대우조선해양 전신인 대우조선공업에 입사해 수선사업본부장, 특수선사업본부장, 조선소장을 지냈다. 박 사장이 전 정부 시절 상무에서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한 사실을 두고 의혹이 제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교 동기라는 점 등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몰염치한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55.7%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산은이 정권 말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을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당시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는 살아나는 조선 경기 속에서 회사를 빠르게 회생시킬 내부 출신 경영 전문가가 필요할 뿐이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경상남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쇄빙LNG선 야말5호선 조타실에서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당시 대우조선해양 상무, 맨 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경상남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쇄빙LNG선 야말5호선 조타실에서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당시 대우조선해양 상무, 맨 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 프랑스 방산 업체로 주문 돌려

하지만 박 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전,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그가 주도한 2차 잠수함 사업의 손실을 '사고'로 인지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삼일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한 결산에서 ▶잠수함 계약 발효의 불확실성 ▶추진 전동기 계약 의무 이행 부담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반영해 지멘스사에 미리 지급한 78억5000만원을 제외한 708억원을 '우발손실충당금'으로 처리했다.

2011년 이후 공들인 인도네시아와의 잠수함 사업이 답보 상태를 넘어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점도 뼈 아픈 부분이다. 지난 2월 김정수 해군참모총장은 자카르타를 직접 방문해 인도네시아군 수뇌부와 만나 2차 잠수함 사업 계약 재개를 바란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인도네시아는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 잠수함 연구 및 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2척의 스코르펜급 잠수함을 건조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네시아 방산산업 전문가이자 CNBC 칼럼니스트 알만 알리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은 대우조선해양과의 2차 계약을 지속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기존에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인도받은 1400t급 잠수함이 ▶엔진 과열 ▶모터 출력 ▶최대 속도 및 잠항 능력 ▶어뢰 발사관 등에서 결함이 잦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프라보워 장관은 대우조선해양과의 1차 계약에서 인도받은 잠수함 3척에 대해 독일 군용 함선 조선회사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에 수리를 지시했고, 재무부의 예산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석경민 기자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석경민 기자

강민국 與 의원 "아무도 징계 않아…감사 필요"

대우조선해양 측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인도네시아와의 계약을 정상화하는 게 최우선 안이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인도네시아와의 2차 잠수함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의 결정이 사업 진행의 핵심이므로 정부 및 해군 등의 각급 통로를 통해 인도네시아 당국과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업 무산을 대비한 차선안으로 "필리핀 잠수함 사업 수주 성공 시, 보유하고 있는 추진 전동기를 사용하거나 선령 30년 내외의 잠수함의 추진 전동기와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민국 의원은 "잠수함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비한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 중인 회사가 780억원 추진 전동기를 선발주했다"며 "계약을 주도한 박두선 사장을 비롯해 경영관리단이 대우조선해양 내 상주해 주요 결정 보고를 받는 산업은행 인사 중 누구도 징계를 받은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도네시아 2차 잠수함 부품 선발주 배경 및 당시 책임자의 사장 승진과 관련해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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