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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이걸 맞다니"…백지영 호소한 '20억 희귀병약'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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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우리 아이 얘기가 맞나 아직은 믿기지 않고 얼떨떨해요.”

“조기 진단 위해 신생아 선별검사 도입돼야”

20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희귀질환 치료제인 졸겐스마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이 약을 처음 투약받은 두돌 아기 A양의 엄마(31)는 17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16일) 딸이 서울대병원에서 졸겐스마를 맞은 뒤 퇴원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A양은 생후 6개월께 영유아 검진에서 뇌성마비 의심 소견을 듣고 거주지 인근의 지방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진단받았다.

척수성근위축증 유전자 치료제인 '졸겐스마'를 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투여받은 A양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척수성근위축증 유전자 치료제인 '졸겐스마'를 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투여받은 A양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척수성근위축증은 SMN1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유전 질환이다. 병이 진행할수록 근육이 약해져 스스로 호흡을 못 하게 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두 돌 안에 90%가 사망한다. 전 세계 신생아 1만명당 1, 2명 발생하며 국내에서는 매년 20명 정도 환자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중 하나가 졸겐스마다. 정맥 주사로 한 번만 맞으면 돼 주사 고통이 작고 약효도 우수하지만 20억원에 달하는 가격 탓에 그간 투여 사례가 없었다. A양도 엄두를 못 낸 채 스핀라자라는 다른 약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해왔다. 스핀라자는 초기 두 달에 4차례 맞고 이후 연간 3번씩 투여해야 한다. A양은 서울대병원까지 차로 3, 4시간씩 달려와 7번 정도 맞았다.

그러다 이달 1일부터 졸겐스마에 건강보험이 적용됐고 A양에 첫 투여가 이뤄진 것이다. 그간 만 2세 이하 6명이 임상 과정에서 무상으로 투여받은 적이 있지만, 건보 적용 후로는 A양이 첫 사례이다. A양 엄마는 “보험 적용 소식을 듣고도 까마득한 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졸겐스마의 1회 투여 가격은 20억원 정도 되고 건보를 적용해도 10%는 환자가 부담해야 해 내야 할 돈이 2억원에 가깝다. 다만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적용받아 소득에 따라 83만~598만원만 내면 되고 나머지는 건보가 부담한다. A양도 2박 3일간의 병실료 등을 포함해 85만원 정도 냈다.

건보 적용이 되더라도 급여 기준에 연령 제한이 있어 모든 환자가 맞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년 생후 12개월 이하 영아 7명이 맞게 되는데 건보 적용 1년 차까지는 13~24개월이면서 기존에 스핀라자를 맞아온 환자 7명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고 A양은 심사에서 기준에 맞아 대상자가 됐다. 보건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범위 내에서 급여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라 생후 12개월까지로 대상을 정했다”라며 “다만 처음이라 스핀라자를 맞던 아이들 중에서 중증이지만 신경이 살아있고 기존 치료제 약효가 있는 아이들에게 졸겐스마를 맞힐 기회를 주자고 해 교체투여 대상을 추가로 7명 정했다”라고 했다.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는 A양과 가족의 모습. 사진 A양 가족 제공.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는 A양과 가족의 모습. 사진 A양 가족 제공.

A양 엄마는 “4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1박 2일 입원해서 금식하고 아이를 재운 뒤 척추에 주사를 맞아야 해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수액을 맞는 것처럼 크게 불편해하지 않고 잘 맞았다”라고 했다. 그는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늘 미안했는데 더는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고 정말 감사하다”라고 했다.
오창현 과장은 “졸겐스마가 스핀라자와 다른 건 투여 경로가 덜 부담스럽다는 것이고, 스핀라자가 SMN2 유전자에 작동하는 반면 졸겐스마는 SMN1 유전자를 몸 안에 직접 넣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A양은 더이상 치료제 투여는 필요없고 앞으로 외래 진료를 통해 운동 기능 등이 개선됐는지 추적 관찰하면 된다.

졸겐스마 건보 적용은 국내 의료복지 역사에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13개월 아이를 둔 엄마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졸겐스마가 허가됐지만, 돈이 없어 죽거나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며 급여 적용을 촉구했다. 가수 백지영이 2월 초 한국노바티스·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와 함께 2분 27초짜리 ‘희망의 빛’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SMA 환자의 딱한 사정을 알려왔다.

A양의 졸겐스마 투여를 이끈 서울대학교병원 채종희 희귀질환센터장(임상유전체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연령 제한이 있다 보니 일정이 촉박했는데 의료진과 제약업계, 정부 등 모든 이들이 노력한 결과”라며 “또 다른 희귀질환자에 희망을 주고, 관련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 낼 수 있게 물꼬를 튼 계기”라고 말했다.

채 센터장은 그러면서 “의약품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SMA를 조기 진단, 치료하려는 시스템이 병행돼야 한다”라며 “다른 대사 질환처럼 신생아 선별검사에 SMA 검사를 넣어 증상이 생기기 전에 선별하고 조기에 치료제를 써 완치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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