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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새 정부 100일, 윤노믹스(Yoonomics)의 비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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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다. 1933년 대공황 시기에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뉴딜(New Deal)’정책을 시행했다.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고 100일 동안 특별 의회를 소집하여 뉴딜을 뒷받침하는 중요 법안을 모두 만들었다. 긴급은행법, 금본위제 폐지, 관리통화법, 농업조정법, 산업부흥법을 입법화했다. 또한, 루스벨트는 대통령 시절 라디오를 통하여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노변담화’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루스벨트 이후 대통령의 취임 첫 100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모든 미국 대통령이 임기 초에 핵심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임기 초에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 불리는 정부 지출 삭감, 세율 대폭 인하, 기업 규제 완화, 통화 정책을 통한 물가 안정 등 4개 항의 ‘경제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주장했다. 뉴딜 이후 정부 개입을 강조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시장 중심으로 바꾸었다. 레이건은 뛰어난 언변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인기도 많았다.

새 정부 첫 100일 국민 신뢰 낮아
다음 100일, 남은 5년이 중요해
핵심 경제정책 꾸준히 추진하고
5년 후 경제와 국가비전 보여줘야

작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첫 100일간 1조9000억달러의 경기부양 법안을 포함하여 11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인세 인상, 고소득층 증세, 친환경 인프라 투자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바이드노믹스(Bidennomics)’를 추진했다.

사실, 대통령의 임기 첫 100일이라고 해서 남은 긴 임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100일이나 그다음 해에 더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00일이라는 숫자가 임의적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당선 직후에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의회와 협력하여 주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시기다. 첫 100일은 새 대통령이 행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국정을 운영하는 스타일이 어떤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공약을 어떻게 이행하는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때문에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첫 100일을 매우 힘들게 지냈다. 극심한 진영 대립, 여소야대의 국회, 여당의 내분으로 정치적으로 힘든 환경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의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당시 52%에서 계속 하락해 지난주에는 25%를 기록했다. 청와대를 개방하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며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약식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시민들과 수시로 어울리는 소통 행보를 했지만, 지지율을 높이지 못했다. 반면, 부정적 평가 비율이 계속 상승했다. 부정적인 평가의 주된 이유는 인사, 경험과 자질 부족, 소통 미흡, 직무 태도, 경제·민생 소홀, 정책 비전 부족 등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 비전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이다. 국정 과제 110개도 발표했다. 그러나, 국정 비전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공약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국민이 잘 모르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새로운 개혁 조치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새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 공정, 상식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의 목표는 ‘저성장 극복과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다. 경제팀은 첫 100일 동안 많은 경제정책을 쏟아냈다.‘ 민간 중심의 역동적 경제’를 만들고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부동산세제 개혁, 법인세율 인하, 규제 혁신, 반도체산업 육성, 탈원전 폐기, 공공개혁 등 여러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해 62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가를 번영시키고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하는 국정 비전이 달성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많은 국민은 저성장·고물가·고부채로 힘들어 하고, 분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국경제학회는 지난 12, 13일 ‘신정부 출범 100일, 경제정책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새 정부가 실질적으로 민간 중심 경제를 촉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첨단 산업을 육성해도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 없이는 저성장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취약계층의 복지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가 수많은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뉴딜’ ‘레이거노믹스’ ‘바이드노믹스’처럼 경제의 비전과 핵심 정책에 대한 확실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생각하는 5년 후의 경제와 국가의 모습이 그려져야 한다.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 민간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면서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정책을 자세히 설명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각오를 밝혔다. 처음 100일보다 앞으로 남은 임기가 더 중요하다. 좀 더 과감하고 확실한 믿음을 주는 ‘윤노믹스(Yoonomics)’를 기대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