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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이재명의 개고기, 박원순의 돌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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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지난 대선 당시 한 후배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기에 이유를 물으니 "능력"이라는 답이 나왔다. 나로선 좀 뜻밖이라 구체적 사례를 물었더니 "성남시장 시절 단숨에 모란시장 개고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솔직히 안타까웠다. 특정 정치인 지지야 개인의 자유지만 그릇된 정보에 기반한 선택이라면 사기 피해자와 다를 게 뭔가 싶어서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얄팍한 감성 한 스푼에 대대적 홍보만 곁들여지면 실체 없는 거짓도 확고한 사실로 둔갑하는가 싶어 답답했다.
이재명 의원은 모란시장 개고기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다. 그가 '모란시장 개고기 아웃(out)'이라는 구호를 본인의 정치적 치적으로 워낙 많이 언급한 탓에 친명(친이재명)이든 반명이든 이 의원이 모란시장 개고기 문제만큼은 해결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 모란시장에선 개고기가 사라진 적이 없다. 성남시가 상인회에 돈(세금)을 주고도 갈등을 유발하며 일부 도축시설을 철거했을 뿐이다.

 이재명 의원이 지난 2016년 난제인 개고기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의 SNS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의원이 지난 2016년 난제인 개고기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의 SNS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민주당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전준위)가 '이재명 방탄'을 완성하겠다고 당헌 80조 개정을 의결한 지난 16일(17일 결국 유지로 결론), 한 신문이 낸 '개고기 아웃 했다더니…보신탕 간판 버젓이 내건 모란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를 냉장고에 보관·전시하고 '보신탕' 간판을 내건 여러 점포가 여전히 성업 중이라는 현장 르포인데, 사실 새 내용은 없다. 과거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왔던 '모란시장 개고기 1㎏에 2만원 판매 중'이라는 식의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란시장에서 여전히 개고기가 팔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지난해 나온 기사 제목. [홈페이지 캡처]

모란시장에서 여전히 개고기가 팔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지난해 나온 기사 제목. [홈페이지 캡처]

이게 엄연한 현실인데도 이 사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2016년은 물론 심지어 지난 대선 당시조차 이 의원과 민주당은 사실이 아닌 걸 대단한 업적으로 둔갑시켜 유권자의 표를 얻어갔다.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대선 유세 때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 3대 개 식용 시장 중 하나인 모란시장을 아예 철폐해버렸다"고 했고, 비슷한 시기 제주도민 1000여 명 역시 '개고기 시장 폐쇄를 이끈 과감한 실천력에 주목한다'며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했으니 하는 말이다. 혹자는 이 의원이 어렵게 해결한 문제를 후임자가 제대로 잇지 못한 게 아니냐 주장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이 의원이 "누구도 해결 못 한 50년 숙제를 해결했다"며 기자회견을 하던 2016년 12월 13일 당일에도 모란시장 상인회는 "개고기 판매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지금까지 장사를 접지 않았다.
비단 개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생계와 직결한 여러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엇갈린 사안이라면 그 어떤 행정가나 정치인도 단칼에 해결하긴 어렵다. 누가 감히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의원은 스스로 '모란시장 개고기 논란 OUT!!!'(2016년 12월)이라는 트위터 홍보를 시작으로, 'SBS 동물농장 본방사수합시다 모란 개시장 철거 방송됩니다'(2017년 3월)라며 추진력을 과시하는 사례로 개고기를 활용했다. 대선 때도 페이스북에 '모란시장도 5년 동안 노력한 결과 깨끗이 정리됐다'(2021년 6월)거나 '모란시장 등 3대 개시장 중 남은 곳은 한 곳(※당시 대구를 의미)'(2021년 11월)이라며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했다. 무슨 연유인지 두 포스팅 모두 현재 삭제된 상태다.

지난해 11월 25일 이재명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11월 25일 이재명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새삼 이 얘기를 꺼낸 건 비록 정권은 바뀌었지만 실체 없는 감성마케팅에만 능했던 지난 5년의 민주당 정권의 그림자가 여전한 것 같아 기록으로라도 확실히 남겨두기 위해서다. 최근 인기와 화제를 모두 잡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잇따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를 미화해 내보내면서 논란이다. 사실 극 초반부터 자폐인 주인공이 고래를 좋아하는 설정 탓에 2013년 박 전 시장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사가 떠오른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당시 돌고래 방사로 박수받았지만 정작 해외의 해양 포유류 전문가들은 야생 부적응 시 재포획 계획이 없는 방류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소개한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소개한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어쨌든, 드라마가 고래를 등장시켜 잠시 시청자들에게 박원순식 감성에 취하게 하는 거 정도야 무슨 큰 해악이 있겠나. 하지만 힘 있는 정치인들이 이런 식의 얄팍한 감성으로 시민 눈을 가려 결과적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최근 서울의 역대급 수해 피해에서 목격한 그대로다. "토목은 싫다"며 "시민 행복" 운운하던 박원순의 감상적 전시행정 탓에 이미 10년 전 예정됐던 빗물 터널이 무산돼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볼 때마다 거짓도 낭만적 진실로 만들어 국민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몇몇 정치인이 자꾸만 생각나니 직업병인가 싶다.

'모란시장 개 식용 철폐' 치적 홍보 #실은 갈등 끝 '보신탕' 간판 여전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정치 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