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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교 30년 ‘옛 친구’ 대만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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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국제부장
강혜란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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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도 옛 친구를 버리지 않는 게 도리다.” 지난 3월 발간된 『중화민국 리포트 1990-1993: 대만 단교 회고』(조희용 저)에서 확인한 한·중 수교 물밑 외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육성이다. 중화민국은 한때 자유중국이라고도 불렸던 대만의 옛 이름. 당시 중국은 중공이었다. 냉전 해체 속에 한국이 북방외교를 서두르자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자국과 단교하지 않을까 우려했고 한국 정부는 이런 말로 달랬다. 엎치락뒤치락 사연은 많지만 결과적으로 대만은 한국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공식 외교 관계를 접었다.

지난 5일 대만 해안선 근처까지 접근한 중국군 군함에서 한 군인이 망원경으로 대만 호위함 란양호를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대만 해안선 근처까지 접근한 중국군 군함에서 한 군인이 망원경으로 대만 호위함 란양호를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비공식·민간 외교로 돈독하게 지내긴 했어도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대만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도발성 방문’이 관심을 폭발시켰다. ‘대만해협 4차 위기’로까지 거론되는 이번 파문은 미·중 간에 험악한 대결 명분을 쌓아 올리고 있다. 중국이 대만섬을 가로지르는 탄도미사일을 퍼붓고 대만산 수입 금지 등으로 화풀이에 나서자 미국 역시 핵항모 레이건함을 대만해협 가까이 전진시키고 있다. 미국으로선 인도·태평양 지배력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좌시할 수 없고, 중국으로선 대만과 미국의 밀착을 끊어내지 않는 한 ‘양안통일’이 요원하다.

이 같은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다가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를 세계는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강대국이 영토 합병과 국체 강요를 위해 무력 전면전을 서슴지 않는 현실을 확인시켰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군 전력 분석을 통해 중국의 무력 침공이 2025년에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현재 대만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영국 이코노미스트)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만약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대만에 대한 미국의 관여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여보다 컸으면 컸지 작진 않을 것이고, 동맹국에 대한 관여 요구 역시 거셀 것이다. 미국이 한국·대만·일본 등과 결성하려는 반도체 공급 동맹 ‘칩4’가 가시화하면 이에 기반한 ‘운명공동체’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사실 30년 전 대만은 한국에 ‘옛 친구’ 정도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때 장제스 총통과 국민당이 임시정부를 도와줬던 역사에다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의 수교 국가이기도 했다. 그랬던 대만 대신 중국을 새 시대의 파트너로 택한 것은 냉전 해체 속에 강대국들의 ‘원대한 새 그림’에 견줘 우리 국익을 계산한 결과였다. 30년 만에 ‘옛 친구’ 대만이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 동맹’의 리트머스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익 줄타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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