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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남아돌아도 쌀은 귀하다, 여전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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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윤종철 국립식량과학원장

윤종철 국립식량과학원장

‘다음 달 1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전국 모든 음식점에서 쌀로 만든 음식은 팔지 못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1969년 1월의 한 일간지 기사다. 분식 장려일, 이른바 ‘쌀 없는 날’(無米日)을 알리는 내용이다. 쌀이 부족했던 시절, 쌀 대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권장하던 때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쌀은 어느덧 흔하디흔한 것이 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쌀 수확량은 늘어났지만 달라진 식습관, 다양해진 먹거리로 쌀 소비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kg. 3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하루에 쌀밥 한 공기(200g)를 채 먹지 않는 셈이다. 반면, 밀가루 수입량은 연간 200만 톤에 달하며,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2027년까지 수입 밀 10%를 국산 쌀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로 쌀가루 가공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쌀가루 전용품종 ‘바로미2’의 수량성과 재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균일한 품질의 쌀가루를 연중 공급하는 방안과 이모작에 적합한 재배법을 보완해가고 있고, 연구진과 생산자, 소비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품종개발과 가공산업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쌀가루 전용품종은 식빵·쿠키·케이크·핫케이크 부침 가루 원료로 제품화되었고, 특히 쌀카스텔라, 쌀맥주 등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쌀 가공식품 산업이 활성화되면 쌀을 다양한 형태로 먹을 수 있어 쌀 소비가 늘어나고, 농업인의 소득 또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8일은 ‘쌀의 날’이다. 쌀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쌀 소비를 늘려보자는 의미에서 2015년 제정됐다. 농촌진흥청이 개발·보급한 통일벼로 쌀 자급이 이뤄지며 ‘쌀 없는 날’이 폐지된 것이 1977년이니, 40년이 채 되지 않는 사이 쌀의 값어치는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쌀이라는 식량 작물의 가치는 단순히 얼마에 팔리느냐 만으로 따질 수 없다. 쌀은 우리나라 농업의 뿌리다. 오늘날의 농업 인프라를 만들기까지 100년의 세월이 걸렸고, 한국처럼 광활한 논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찌개·국·김치 등 우리 식습관을 형성하고 있는 음식들도 쌀밥에 맞춰 발달해왔다. 쌀은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식량 부족으로 쌀밥 한 공기가 그저 귀하기만 했던 시절은 그 시절대로, 쌀로 빵이나 과자·면·맥주를 만들어 먹는 시대가 된 지금도, 쌀은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다.

윤종철 국립식량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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