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모범가족’의 제목은 일종의 반어법이다. 정교수를 꿈꾸지만 만년 시간강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편 동하(정우)와 그에 질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은주(윤진서), 사춘기 반항으로 엇나가는 딸과 심장 이식 수술이 필요한 아들까지. 겉보기에 ‘모범적’인 가족이지만, 속사정은 안 그렇다. 서로 간의 갈등으로 가정이 곪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허울뿐인 울타리가 된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동하는 아들 수술비를 교수가 되기 위한 뇌물로 갖다 바쳤다가 허망하게 날려버린다. 그렇게 가족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순간, 동하는 시체 두 구와 함께 거액의 돈 가방을 발견하고, “가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출처 모를 돈에 손을 대면서 거대한 범죄 조직과 엮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사건은 동하의 가족을 중심으로 또 다른 형태의 가족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점점 심각해진다.
“소통 부재 가족, 사실적 우화로 표현”
‘모범가족’을 연출한 김진우 감독은 16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은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가족은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첫 단추라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관계다. 외부에서 모범적이라 평가 받는 가족도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결국 소통의 부재에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옳다 그르다, 교조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사실적인 우화처럼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범죄 스릴러 장르를 취하면서도, “여러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삶의 현실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김 감독은 한국 장르물의 통상적인 연출을 벗어난 작법을 곳곳에 활용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가 참 잘하는 장르물의 작법은 주인공과 빌런을 중심에 두고 긴박하게 몰아붙이는 작법”이라며 “그런데 유럽 장르물은 무조건 몰아치는 방식보다는 서브 캐릭터들도 좀 더 디테일하게 살려주는 방식이다. 이런 또 다른 장르물의 재미를 결합시키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연출 의도대로 ‘모범가족’은 사전적 의미의 ‘가족’에 해당하는 동하네 가족은 물론, 가족처럼 의지했던 동료의 죽음을 파헤치는 경찰, 가족 같던 조직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조폭 등 다양한 인물을 차분히 비추며 서사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디테일한 공간·음악으로 새로운 장르물 완성
‘몰아치지’ 않는 호흡을 완성하는 데에는 화면 속 긴박한 상황과는 언뜻 대비되는 느긋한 템포의 컨트리풍 음악이 한몫을 했다. 김 감독은 이같은 음악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음악이 배우들의 연기에 선행해 관객을 끌고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음악으로 감정을 몰아붙이기보다 한발 떨어져서 관조하듯이 흐르는 게 오히려 심리적 불안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극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범죄 조직을 묘사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조폭은 물론 사회 통념상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어떻게 하다가 조폭 일을 하고 있으며, 왜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등 ‘사람’이 좀 더 보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해 질 녘의 휑한 도로, 한밤중의 호숫가, 동틀 무렵의 마을 등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경은 모두 실제 시간대에 맞춰 촬영했다. 김 감독은 “대사가 많지 않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려면 이들이 들어가 있는 공간과 시간대를 통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특정 시간대만이 주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특정 시간대는 찰나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전 답사와 콘티 작업을 철저히 한 뒤에 현장에서 딱 두 테이크 정도에 촬영을 끝낼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동하를 연기하며 땅에 파묻히는 연기, 추격 신 등 강도 높은 액션 장면을 소화한 배우 정우는 17일 화상 인터뷰에서 “새벽 시간에 촬영을 많이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돈 세탁하러 갔다가 쫓기는 장면에서는 촬영이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숨을 가쁘게 내쉬었던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그는 동하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모범적으로 살아왔던 평범한 시민이라서 해봤자 얼마나 역동적일까 싶어서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첫 촬영하고서 ‘앞길이 구만리인데 촬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왜소한 가장의 느낌을 주기 위해 체중을 4~5kg 감량하기도 했다는 정우는 “아이의 수술비를 날려버린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어디선가 봤을 법한 정형적인 줄거리인데, 그걸 납득시킬 수 있는 건 배우의 연기라고 생각했다”며 “디테일하게 감정 표현을 해야 시청자들이 캐릭터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겠다 싶어서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정성을 쏟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SLL 소속 프로덕션H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가 제작, 10부 전체가 공개된 ‘모범가족’은 정우 외에도 박희순, 윤진서, 박지연, 최무성, 김성오, 김신록 등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해 각자의 사정을 지닌 인물을 연기했다. 넷플릭스가 전세계 시청시간을 집계해 발표한 8월 둘째주(8~14일)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에서 공개 3일 만에 9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