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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 아역 출신 '관종' 됐다…'겟 아웃' 공포 거장의 기괴한 SF '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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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SF 공포 영화 '놉'에서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사진)이 연기한 '리키'는 아역 배우 시절의 정신상태로 몸만 자란 어른처럼 묘사되며 스펙터클과 관심에 집착하는 세태를 풍자한 영화 주제를 강조한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조던 필 감독의 SF 공포 영화 '놉'에서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사진)이 연기한 '리키'는 아역 배우 시절의 정신상태로 몸만 자란 어른처럼 묘사되며 스펙터클과 관심에 집착하는 세태를 풍자한 영화 주제를 강조한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뉴욕 태생 코미디언 조던 필(43)은 5년 전 백인 여자친구의 부모 집에 인사를 간 흑인 청년이 섬뜩한 납치극에 휘말리는 내용의 데뷔작 '겟 아웃'으로 공포영화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그는 ‘어스’(2019)에선 지하세계에 숨어 살던 도플갱어들의 지상 세계 습격을 통해 계급 불평등을 전면에 다루며, 두 작품 만에 공포영화의 '거장' 반열에 우뚝 섰다. 흥미로운 설정과 송곳 같은 사회 비판은 조던 필의 인장이 됐다. 국내에서도 ‘조동필’이란 애칭과 함께 팬덤이 생겼다.
그런 그가 신작 ‘놉(Nope)’(17일 개봉)에선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39)과 손잡고 외계인 지구 침공 영화에 도전했다. 또 다시 그가 각본‧연출‧프로듀서를 겸했다.

17일 개봉한 SF 공포 영화 '놉' #'겟 아웃' 스타 감독 조던 필 신작 #스티븐 연 "비인간화의 외로움 느껴"

침팬지의 살육장 된 美가족 시트콤 촬영장 

제목은 “안돼!”란 의미. 코로나 시국 죽어가던 영화관을 살릴 스펙터클을 구상하던 그는 동시에 “왜 우리는 이렇게 스펙터클에 집착하는가”란 질문에 사로잡혔단다. 영화사가 배포한 사전 인터뷰 내용이다.
특히 유튜브‧SNS를 통한 자기 과시가 돈벌이로 연결되는 요즘 시대엔 스스로 스펙터클이 되려는 욕망이 일상 곳곳에 넘쳐 흐른다.지금도 재난 상황에서 자주 목격되는 광경이다.
‘놉’에서 스티브 연이 연기한 ‘리키 주프 박’은 이런 욕망을 체화한 듯한 인물. 그는 만년 조연만 하던 아역 배우 시절 끔찍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인기 시트콤 ‘고디의 집’ 녹화 도중 풍선 터지는 소리에 놀란 침팬지 배우가 갑자기 맹수처럼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사건은 코미디쇼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등에서 패러디될 만큼 유명해지고, 이는 어린 리키에게 잘못된 계시로 각인된다. 어른이 돼 할리우드 외곽에서 아역 시절 캐릭터 이름을 딴 놀이공원을 운영하던 그는 오랫동안 목 말랐던 대중의 관심을 다시금 사로잡을 기회를 포착한다. 언젠가부터 산골짜기 뭉게구름 속에 숨어 초원의 말(馬)들을 사냥하는 괴비행체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기로 한 것. 그런데 이웃 말농장의 말 조련사 남매 OJ(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케케 파머)도 똑같이 한몫 벌 작심을 한다. 동물 습성을 존중해온 OJ 만이 이 모든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 점차 깨닫는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라는 그의 대사 대로다. ‘겟 아웃’의 주연 배우 다니엘 칼루야가 다시 조던 필과 뭉쳤다.

다른 존재 길들이려는 인간의 오만함 "안돼!"

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길들여도 된다고 믿는 걸까. 애초에 길들일 수 있다는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고디의 집’ 참사의 순간, 백인들의 쇼 비즈니스 무대에서 아시아계 아역 배우 리키와 침팬지 배우는 구경거리로 착취 당해왔다는 점에서 동등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이 악명 높은 사고로 배우 경력이 단절된 리키가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한 이유에 대해 조던 필 감독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주목 받기 원하는 존재로 길러졌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영화 '놉' 각본, 프로듀서, 연출을 겸한 조던 필 감독이 촬영 당시 현장에서 작업 중인 모습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놉' 각본, 프로듀서, 연출을 겸한 조던 필 감독이 촬영 당시 현장에서 작업 중인 모습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지난달 22일 미국 개봉에 맞춰 공개된 현지 매체 ‘벌처’ 인터뷰에서 스티븐 연은 영화 ‘구니스’(1985)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 등 80년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아역 배우로 활약한 베트남계 미국 배우 조너선 케 콴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자신도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누군가 “야, ‘워킹데드’에 나오는 동양인이야!”라고 외쳤을 때 “내 존재가 인종으로 규정될 때 독특한 고립감을 느낀다”면서 “누군가를 어떤 틀 안에 넣어 정의하는 느낌, 그 비인간화의 깊은 외로움 속에 리키가 살아왔다고 봤다”고 했다. 그는 또 “리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SNL’(같은 코미디쇼)에서 그것을 패러디했다는 게 얼마나 지독한 일이냐”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 느낌은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스펙터클 집착세태, 스펙터클로 꼬집는 호러

‘놉’은 스펙터클의 함정을 지적하지만, 그 혹독한 교훈을 또 다른 스펙터클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놉’의 제작비는 6800만 달러로, ‘겟 아웃’의 15배 규모다. 조던 필 감독이 처음 SF 요소를 접목하며 잡은 목표점도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1975)다. ‘어스’에 이어 함께한 프로듀서 이안 쿠퍼는 “조던 필은 ‘죠스’에서 사람들이 바다를 두렵게 바라봤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구름을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영화 '놉'엔 최초의 흑인 ‘영화 스타’이자 영화 역사상 최초로 무명으로 착취당한 유색인종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실존 프랑스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 브릿지가 19세기 말 촬영한 ‘질주하는 말’ 연속 사진은 영화의 전신으로 꼽히는데, 이 사진에서 말을 몬 무명의 흑인 기수가 극중 OJ‧에메랄드 남매의 선조. OJ가 이 까마득한 선조의 사진 속 모습을 재현한 장면에선 잊혔던 최초 흑인 배우를 스크린에 되살리려는 조던 필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겟 아웃'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다니엘 칼루야(사진)가 '놉' 주인공 OJ 역할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뭉쳤다.[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놉'엔 최초의 흑인 ‘영화 스타’이자 영화 역사상 최초로 무명으로 착취당한 유색인종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실존 프랑스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 브릿지가 19세기 말 촬영한 ‘질주하는 말’ 연속 사진은 영화의 전신으로 꼽히는데, 이 사진에서 말을 몬 무명의 흑인 기수가 극중 OJ‧에메랄드 남매의 선조. OJ가 이 까마득한 선조의 사진 속 모습을 재현한 장면에선 잊혔던 최초 흑인 배우를 스크린에 되살리려는 조던 필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겟 아웃'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다니엘 칼루야(사진)가 '놉' 주인공 OJ 역할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뭉쳤다.[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극중 ‘진 재킷’으로 불리는 괴비행체는 사흘째 움직이지 않는 뭉게구름 속에 숨어있다가 후반부에야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공학 교수의 감수를 거쳐 해파리, 새의 움직임과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참고한 외계생명체 디자인을 18개월 만에 완성했다. ‘덩케르크’ ‘테넷’ 등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영화를 해온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의 촬영도 몰입감을 더한다. 네 종류의 아이맥스 카메라로 영화의 40%를 촬영했다.
‘놉’의 첫 장면, 지구 밖에 있던 진 재킷의 시점을 대변하는 듯한 카메라가 ‘고디의 집’ 참사 당시 비명을 듣고 지구로 빨려드는 듯한 장면 등 컴퓨터그래픽(CG)도 감쪽같다.
‘놉’은 흥미로운 이미지가 연속으로 전시되는 영화지만, 여러 요소가 혼재된 탓에 이야기가 산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가 먼저 개봉한 해외에선 “영화감독으로 위장한 마술사 조던 필 감독의 매끄러운 손재주 덕분”(인디펜던트)에 전개 자체는 흥미롭지만, 여러 소재를 흩어 놓은 탓에 “실망스러울 정도로 불완전하다”(오스틴 크로니클)는 지적도 나왔다.

조던 필 감독의 데뷔작 '겟 아웃'과 두번째 영화 '어스' 포스터.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조던 필 감독의 데뷔작 '겟 아웃'과 두번째 영화 '어스' 포스터.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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