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출산율을 끌어올릴 세 개의 열쇠

중앙일보

입력 2022.08.1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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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이대로 가면 한국의 앞길에 두 개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진다. 하나는 북핵이고 다른 하나는 저출산이다. 대한민국의 존망(存亡)은 두 다이너마이트를 피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그나마 북핵은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 또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도 명확히 존재한다. 그런데 인구문제는 여태까지 해법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제대로 책임지는 부처도 없다. 저출산 대책에 작년 중앙정부 예산만 43조원, 2006년부터 계산하면 2백조원이 투입됐지만 합계출산율은 오히려 2000년 1.48에서 작년 0.81로 급락했다.

출산율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한국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혁신이 힘들고 장기적으로 성장률도 떨어진다. 연금개혁을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결국 국력이 약화하여 열강 사이에서 생존하기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에 집중하기보다 관련이 있다고 짐작되는 항목에 산발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왔다. 이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으로 저출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저출산 해결해야 국가 미래 열려
찔끔 정책이 아니라 빅 푸시 필요
노동, 교육, 복지제도 함께 풀면서
과잉 경쟁 제어하는 문화 세워야

정책, 제도, 문화는 출산율을 반등시킬 세 개의 열쇠다. 출산율 하락의 구조적 이유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때문이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면 출산과 육아의 기회비용이 급증한다. 따라서 정부는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는 정책을 통해 이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제도와 문화적 이유가 결합하여 출산과 양육의 기회비용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과 아울러 제도와 문화를 같이 바꾸지 않고서는 출산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부, 기업, 종교계 등 우리 사회 전체가 저출산 해결에 나서야 할 이유다.

첫째, 정책은 찔끔 대책이 아니라 ‘빅 푸시(big push)’가 돼야 한다. 결혼과 출산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평생 소득, 일자리, 주거, 경력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그런데도 재정 지원이 1인당 수백만원에 그친다면 저출산 대책으론 불합격이다. 따라서 임시 고용이나 소규모 현금을 살포하기보다 예산을 집중해 보육 및 주거 대책을 확실히 세워 주는 편이 낫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하지만 주거와 보육, 경력 관리는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

둘째, 노동, 교육, 복지제도를 함께 풀어야 한다. 출산율 하락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되었다. 이전에는 졸업 후 취업하면 한 직장에서 평생을 일할 수 있었다. 삶이 예측 가능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등 가족 설계도 쉬웠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엔 세상이 바뀌었다. 특히 상대적 고연령층은 노동시장의 기득권자, 즉 인사이더인 반면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젊은이는 아웃사이더다. 청년들은 역량 면에서 정규직 선배보다 모자랄 것이 없지만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봉에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거기다 자녀를 낳으면 엄청난 사교육비의 부담이 생긴다. 이런 불공정하고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불합리한 교육제도를 그냥 둔 채 재정 투입만으로 출산율을 반등시키긴 어렵다. 또 노동과 교육을 개혁하려면 복지 수준을 강화하고 제도를 재설계함으로써 그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문화라는 열쇠로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문화는 출산율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르난데스(Fernandez)와 포글리(Fogli)는 미국 이민 2세 여성의 출산율이 부모의 출신국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에서 온 이민 2세 여성은 저출산 국가 출신 여성보다 더 많은 자녀를 낳았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까.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책임지려는 성향이 강할수록, 그리고 경쟁 지향적인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낮다. 이런 문화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를 적게 낳아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끔 그 질을 높이려 한다.

한국의 출산율을 세계 최저로 내모는 주범은 과잉 경쟁이다. 태어나면 기저귀는 무슨 브랜드, 어떤 분유를 먹여야 하고, 유모차는 어떤 명품을 써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경쟁하는 사회에서 누가 선뜻 아이를 낳으려 할까. 유치원 다닐 나이부터 시작된다는 사교육의 엄청난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깔때기처럼 좁은 과정을 통과해 승리를 거머쥐려면 엄마는 경쟁의 총사령관, 아빠는 보급관, 아이는 전사(戰士)가 돼야 하는 문화에서 출산은 축복이 아니라 전쟁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특정 대학, 특정 거주 지역으로 줄을 세워 성공 정도를 판단하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없으니 출산율도 세계 최저인 셈이다.

한국의 최저출산율은 어그러진 문화와 헝클어진 제도, 효과 낮은 정책이 합쳐진 결과다. 이 셋을 바로잡아야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물질과 소유가 아니라 ‘가치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제도를 재정렬하여 사회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도모해야 한다. 인구문제를 방기(放棄)하는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 버린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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