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한동훈 법치’가 전부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정효식 사회1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잘하고 있지 않느냐.”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을 놓고 여권 관계자가 ‘그래도 한동훈’이라며 위안 삼아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산 대통령실과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100일 정치는 상징적 장면 하나로 파탄이 났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란 윤 대통령의 문자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날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려고”라며 맞받는 기자회견이 생중계됐다.

정부는 이상 없나. 100일이 되도록 윤석열 정부의 대표 브랜드 정책을 내놓은 장관이 없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선 공약은 물론 대통령직인수위 110대 국정과제에도 없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꺼냈다가 사퇴한 일만 국민 뇌리에 박혔다. 교육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검찰총장까지 아직 장관급 네 자리가 공석이다.

지난 12일 광복절 특사 명단을 발표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스1]

지난 12일 광복절 특사 명단을 발표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스1]

100일 동안 정부·여당이 기능 부전에 헤매는 사이 ‘2인자’ 한동훈만 눈에 띄는 한동훈 현상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행정부 가운데 정책 부서가 아니라 법 집행 수장인 법무부 장관이 국민을 상대로 직접 마이크 잡는 일이 잦아졌다.

한 장관은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첫 사면권 행사인 광복절 특사 명단을 직접 발표했다. 국민 정서와 법 원칙을 이유로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치인·공직자 사면 배제를 관철한 것도 한 장관이라고 한다. 그는 사면 전날인 11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박탈)’ 법률 시행에 맞서 직권남용 등 공무원 범죄, 마약·보이스피싱·조직폭력 등 민생범죄를 각각 부패·경제범죄로 재분류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을 브리핑했다. ‘시행령 쿠데타’란 민주당에 “서민 괴롭히는 깡패 수사, 마약 밀매 수사, 보이스피싱 수사, 공직을 이용한 갑질 수사, 무고 수사를 왜 하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반박하는 입장문도 직접 냈다.

취임 당일 전전임 추미애 장관이 폐지한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을 부활했고, 헌법재판소에 검수완박법 위헌 소송을 내고, 조국 전 장관이 만든 ‘형사사건 공보금지’ 규정을 ‘형사사건 공보’ 규정으로 개정·시행한 것도 한 장관이다. 그는 매번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 회복을 앞세웠지만 야당·반대파와 대결과 갈등의 최전선에 섰다.

이 100일이 한동훈 띄우기를 의도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법치’로 정치를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된다. 특히 법치를 세력다툼, 정쟁 도구로 쓰면 나라가 망가진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는 ‘법치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