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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 디테일이 성패 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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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보조금 520억 달러(약 68조원) 지원, 시설투자 금액의 25% 세액 공제. 지난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주요 내용이다. 지원 대상은 미국에 반도체 제조·연구 시설을 짓는 기업이다.

이에 따라 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 공장 증설 혹은 투자를 약속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도 수혜를 볼 전망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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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2조3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20년 동안 1921억 달러(약 251조8000억원)를 투자해 테일러시에 9개, 같은 주 오스틴시에 2개의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 면담에서 밝힌 220억 달러(약 28조8000억원)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중 150억 달러(약 19조7000억원)를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과 연구·개발(R&D) 협력에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국 투자 제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결정하기 몹시 어려운 처지”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40%가량을 생산한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안 투자를 접는 것, 시안에 계속 투자하면서 미국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것 모두 삼성전자에 어려운 선택지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D램·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 확장과 장비 투자에 2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황 교수는 “현재 구도에선 한국 기업이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 같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과 경쟁하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 경쟁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도 분석했다. 반도체 지원법이 미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목적이 엿보이는 만큼 결국 경쟁자는 미국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자국 기업 중심으로 지원책을 펴야 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텔은 TSMC가 선두를 달리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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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결국 중국·미국의 반도체 기업과 모두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제적 설비 투자와 초격차 기술력 확보가 한층 중요해졌다. 하지만 최근엔 시장 불확실성 등으로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다양한 이슈가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어 단기 설비 투자를 탄력적으로 재검토하며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2026년까지 340조원 이상의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한 인프라 지원, 규제 개선 등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마련했다. 가령 평택·용인 반도체 단지 인프라 구축에 국비를 지원하고, 대기업 설비 투자 세액 공제율을 8~12%로 상향하는 등의 조치다.

하지만 경쟁국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대만의 극심한 가뭄 때 대만 정부가 반도체 공장 인근 농민들을 직접 설득해 농업용수를 TSMC에 우선 공급할 수 있었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이 주민 민원을 이유로 여주시의 공업용수 지원 반대에 부딪혀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여주시에서 하루 26만5000t의 공업용수를 끌어오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여주시가 “한 지역만 희생할 수 없다”며 제동을 건 상황이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경기도 등이 ‘용인 반도체 산단 용수시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을 협의 중이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도 반도체 전략을 강화하고 있지만, 막대한 규모의 직접 보조금과 파격적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주요국에 발맞춰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지원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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