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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천하람이 고발한다

"싸가지 준빠" "틀튜브 꼰대"…쪼개진 국힘, 尹이 먼저 챙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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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천하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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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념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배경은 지난 대선 유세 현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광복절 기념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배경은 지난 대선 유세 현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충돌하고 있다. 이런 충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둘러싸고 국민의힘 지지층도 둘로 쪼개져 싸운다. 국민의힘 게시판에서 당원들이 서로 다투는 걸 보면 같은 당 소속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서로를 ‘싸가지 없는 준빠(이준석 팬을 지칭하는 멸칭)'와 ‘틀튜브 보는 틀딱 꼰대’(강성 보수 유튜브를 시청하는 고령층에 대한 멸칭)로 공격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찔하다.

국민의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로 편 갈라 싸우다 결국 분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공존이 가능할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의힘 지지층이 왜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반 이준석 성향의 보수 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반 이준석 성향의 보수 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지지층 충돌에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각각에 대한 호불호 등 표면적 이유도 있지만, 본질적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크게 ①세대 ②이념 ③지역 면에서 매우 이질적인 세력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쓰는 언어가 다르다. 차이점을 몇몇 키워드로 살펴보자.

같은 단어 다른 뜻, 자유 

첫 번째 키워드는 자유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 모두 자유를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세대와 이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 지지층은 자유를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의 핵심가치로 이해하고 사용한다. 즉 반공에 초점을 맞춘다. 기업경영과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국가체제로서의 자유나 시장의 자유 같은 ‘거창한 자유’보다 개인의 ‘소소한 자유’를 더 중시한다. 애당초 젊은 세대는 체제 경쟁을 겪은 적이 없어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으니, 이들에게 반공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권위주의적인 규제를 들이대고, 개인의 자유에 무관심해 보이면 아무리 자유를 부르짖어도 보수 정권까지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는 개인의 인터넷 이용 자유를 강화하는 HTTPS 차단 해제나 카카오톡 검열 금지에 환호하고, 조직의 논리와 관계없이 윗분들이 싫어하는 의견도 과감하게 낼 수 있는 실질적인 발언의 자유와 같은 ‘개개인의 자유’를 원한다.

지난 8일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대토론회에서 신인규 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 국바세는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부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8일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대토론회에서 신인규 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 국바세는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부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사진기자단

두 번째는 ‘내부총질’이다. 소신 발언과 내부총질의 경계를 정하는 건 쉽지 않다. 내부총질 자체가 다소 내로남불의 성격을 가진 용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누군가의 비판 내용에 동의할 때는 필요한 소신 발언으로, 반대로 동의하지 않을 때는 내부총질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소신 발언이든 내부총질이든, 진영 내부에 대한 비판을 대하는 태도가 성향이 다른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 중 하나다.

말 잘 듣는 스타 청년정치인이라는 모순

우선 세대를 기준으로 나누면, 젊은 세대가 내부비판에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비단 정치영역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과거에 비해 사회 각 분야의 의사결정 구조가 수평화하고, 창의성·자율성이 중시되면서 아무리 조직 논리나 상사 의견이라도 부당하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내부 비판에 관대한 것을 넘어, 원칙과 일관성을 요구한다. 정치인들에게 내부 비판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해 내로남불 태도를 보이면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신뢰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태도의 유지, 필요할 때 내부 비판을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 잘 듣는 청년정치인’과 ‘스타 청년정치인’이 양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념적 측면에서는 집단주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내부비판의 허용 범위가 넓다. 자유를 반공으로 이해하는 전통적 지지층은 집단 내부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 내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지지층은 내부 비판에 적극적인 응원을 보낸다.

지역에 따른 격차도 중요하다. 국민의힘 당세가 강한 대구·경북 지역 등에서는 웬만한 일로는 국민의힘에 불리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니 잘못된 일이 벌어져도 빨리 지적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 편 잘못을 지적해서 상대 정당에 빌미를 주는 것보다는 지지자가 결집해서 한목소리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기 쉽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도권의 경합 지역이라면 어떤 정치인도 지지층 결집만으로는 당선이 어렵다. 지지층 결집을 넘어 중도층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으로까지 확장이 필요하다. 이런 지역 정치인은 민심의 흐름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당 또는 정부의 행보가 민심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된다.

거꾸로 말해 국민의힘 지지층 결집만으로 당선이 가능한 우세 지역 정치인은 지지층 내부의 반발을 야기하는 내부 비판이 오히려 낙선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우세 지역에서는 본선 당선 가능성 이전에 공천 여부가 더 결정적이므로,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내부 비판하는 건 본인의 정치 인생에 부정적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21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2020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상황실을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21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2020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상황실을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이준석 대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지지층은 이 전 대표가 젊은 세대의 지지와 개혁적인 이미지를 사실상 독점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전 대표 영향력을 키워준 대표적 인물이 한때 전통적 지지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던 황교안 전 대표라는 점이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황 전 대표가 이끈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수도권에서 완패했다. 그 결과 소장파라고 할 수 있는 비영남 의원이 많지 않아, 수도권과 영남의 지역적 균형이 깨진 상태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 원내에 개혁을 바라는 젊은 세대, 수도권의 목소리가 전달될 창구가 사실상 없어졌다. 때마침 대선 승리의 염원과 세대연합론이라는 이 대표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대표가 과거 소장파 의원 모임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됐다.

젊음 외면한 기득권당으론 선거 필패 

전통적 지지층만으로는 어떠한 선거도 이길 수 없다는 게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시절 선거 4연패를 통해 확인됐다. 따라서 젊은 세대, 새로운 이념, 수도권 지지층을 배제하는 건 다음 총선과 대선 패배를 미리 확정 짓는 일과 같다. 물론 전통적 지지층 없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에 선을 긋는 근본적 이유다. 결국 지지층 연합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지지층 내부 충돌이 없으면 편하겠지만, 편하게 지내다 선거에서 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유한국당 시절에는 지지층 내부의 불협화음이 적었다. 당내에 젊은 지지층이 미미했고, 당 밖 젊은 세대는 자유한국당에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가운데)이 지난 11일 수해 복구 자원봉사를 위해 당 지도부와 찾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왼쪽) 등과 대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해 각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가운데)이 지난 11일 수해 복구 자원봉사를 위해 당 지도부와 찾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왼쪽) 등과 대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해 각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현재 국민의힘에 전통적 지지층이나 영남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은 차고 넘친다. 핵심은 젊은 세대와 수도권 지지층의 지지를 끌어낼 인물이다. 쉬운 길은 없다. 이준석 전 대표를 대체할 수 있는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의미한 이준석 대체자를 찾기보다는, 이 전 대표가 공을 들인 젊은 세대와 호남, 수도권 지지층을 만족시킬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젊은 세대와 호남, 수도권의 유권자가 공감할 정책을 추진하고, 이들의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길러내서 공천하고 당선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