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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는 무슨, 열수도 안 되죠"…'인간 유재학'을 물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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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8년 만에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지휘봉을 내려놓은 유재학. 일선에서 물러나 총감독을 맡은 유재학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박린 기자

18년 만에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지휘봉을 내려놓은 유재학. 일선에서 물러나 총감독을 맡은 유재학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박린 기자

18년간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를 이끌었던 유재학(59) 감독은 지난 6월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일선에서 물러나 총감독을 맡았다. 미국에서 아들 결혼식을 치르고 석 달 만에 귀국한 유 총감독을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시 현대모비스 훈련장에서 만났다. 앞서 제자 등 측근들에게 ‘인간 유재학’을 물었다.

선수와 감독으로 6차례 챔프전 우승을 합작한 유재학(오른쪽)과 양동근(왼쪽). 사진 KBL

선수와 감독으로 6차례 챔프전 우승을 합작한 유재학(오른쪽)과 양동근(왼쪽). 사진 KBL

양동근(현 현대모비스 코치, 2004~2020년 선수와 감독으로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 합작)
“사자가 새끼를 낳으면 낭떠러지 밑에 떨어뜨려 기어 올라오게 한다잖아요. 제가 신인 땐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유 감독님은 진짜 무서웠어요. 농구 면에서는 완벽을 추구하시니까. 당시 (이)상민이 형, (김)승현이 형 같은 가드를 요구하는 시대였는데, 전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감독님이 제 장점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느끼도록 코너로 몰아 붙였어요. 2년차 때까지 슛을 하나를 못 넣으면 연습 때 똑같은 동작으로 100개씩 쐈어요. 그런 게 하나하나 쌓여서 농구가 는 것 같아요. 사석에서는 제 미래와 꿈을 들어 주시고 정이 많으셨죠. 제가 코치가 되고 ‘와 진짜 외로우셨겠다’고 느꼈어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위치라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셨을 것 같아요.”

유재학
“포인트 가드는 타고 나야 합니다. 타고난 선수는 곁가지만 쳐주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선수는 아주 작은 것까지 신경 써줘야 해요. 될 때까지 시켰어요. 강한 훈련을 받아 들이는 친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습니다. 저와 목표와 방향이 같은 동근이는 가르칠 맛이 났어요. 성심성의껏 가르쳤죠. 현대모비스 선수단은 오전 7시40분경에 식사를 함께 합니다. 대부분 까치집 머리를 한 채 겨우 내려오는데, 동근이는 꼭 씻거나 얼굴에 물이라도 묻히고 내려 왔어요.”

1999년 대우 감독 시절 유재학. 중앙포토

1999년 대우 감독 시절 유재학. 중앙포토

방민환(전 대우증권 단장)
“1998년 35세였던 유재학을 최연소 프로 감독으로 뽑았습니다. 첫 만남 때 당당하고 당돌했어요. 동시에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0년이 넘었는데도 지금까지도 연락이 와요. 유 감독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유재학
“당시 연수원 강당을 농구 코트로 바꾸고 바닥을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SK 빅스 감독 시절 제가 학연을 따진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구단에서 사실 확인 후 계속 팀을 맡겼죠. 독이 바짝 올랐습니다. 진짜 숙소 밖을 안 나오고 죽기살기로 했죠. 새벽, 오전, 오후, 야간 훈련까지 다 나가 선수들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감독과 코치로 13년간 인연을 맺은 유재학과 임근배. 중앙포토

감독과 코치로 13년간 인연을 맺은 유재학과 임근배. 중앙포토

임근배(현 여자농구 삼성생명 감독. 신세기부터 모비스까지 코치로 인연)
“13년을 함께하며 희노애락이 많았죠. 2000년 신세기 시절 이것 저것 다 안되니 속상해서 술 한잔 하며 같이 울었어요. 노래방에서 ‘사노라면’, ‘넌 할 수 있어’를 함께 불렀죠. 2008년 (양)동근이가 군입대하고 6강도 못 간다고 했는데 던스턴을 데리고 타이트한 수비로 정규리그 1위를 했어요. 제가 2008년에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끊었습니다. 사실 코치가 술자리에 빠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감독님이 이해해줬어요. 2008년 가족 사정으로 코치를 관두고 캐나다로 떠나야 할 때도 또 이해해줘서 지금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재학
“술은 개인의 신념이니까 이해했습니다. 다만 혼자 술자리를 지키고 근배 방에 찾아가 ‘아 힘들다’ 농담한 적은 있었죠(웃음).”

연세대 시절 유재학. 중앙포토

연세대 시절 유재학. 중앙포토

허진석(전 중앙일보 농구 기자)
“1997년경 신선우의 현대가 최강이었습니다. 유 감독의 대우는 키 1m90cm이 안되는 정재헌 밖에 없었죠. 1쿼터에 식스맨을 투입해 풀코트 프레스로 소모전을 펼쳐 상대 리듬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자들도 유재학이란 사람에 매료됐죠. 팀을 힘겹게 꾸려갈 때도 당대 일등 감독 신선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습니다. 연세대 신입생 때 연고전에 마지막 슛을 넣었을 때부터 지켜봤습니다. 기아자동차 시절 1mm 틈만 보여도 절묘하게 패스를 찔러줬죠. 스케일이 크고 시야가 넓었어요. 당시 패스 받은 선수가 드리블을 치면 어시스트가 인정되지 않는 시절인데도, 어시스트가 2등보다 두 배는 많았죠.”

유재학
“경희대와 경기에서 어시스트 21개를 했던 것 같아요. 당시 1차, 2차, 3차 대회 때 어시스트상을 받았어요. 삼성전자에서 상품으로 냉장고, TV 등을 줬는데, 우리집 전자제품은 다 받은 거였죠.”

위성우(현 여자농구 우리은행 감독,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여자대표팀 감독)
“감독들이 가장 닮고 싶은 지도자죠. 오랜 시간 지도하면 루즈해질 수 있는데도 흐트러짐이 없으셨어요. 아시안게임 때 남자대표팀 훈련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전술을 여쭤보면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네 생각이 더 중요하고 옳다’고 격려해주셨어요. 이란과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유재학이니까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고 생각해요.”

2013년 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은 유재학(오른쪽)과 이상범(왼쪽). 중앙포토

2013년 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은 유재학(오른쪽)과 이상범(왼쪽). 중앙포토

이상범(원주 DB 감독. 대표팀에서 코치로 한솥밥)
“만수(萬手)'란 별명은 제가 지었어요. 2010년쯤 기자회견에서 ‘저 형은 만수’라고 했죠. 전 초짜 감독이었는데, 형은 수가 만 가지는 되는 것 같았어요. 치고 받는 원포인트 게임 때 생각하지 못한 수를 썼어요. 임기응변이 탁월해요. 경기 흐름을 잘 캐치해 기가 막히게 선수를 써요. 요즘도 ‘형은 진짜 잔머리가 좋다’고 놀려요. 인천 아시안게임 이란과 결승전 당시 조금은 부진했던 동근이를 막판까지 밀어붙였는데 3점슛과 패스로 해결했죠. 선수와 쌍방향 신뢰가 있으니 가능한 결과였죠.”

유재학
“만수는 무슨. 열수도 안됩니다. 말도 안되는거지만 불러주니 기분은 좋네요. 사실 요즘 대표팀에 뽑히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친구들도 있지만, 당시 12명은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이란은 아메드 하다디(2m18㎝) 등 높이가 워낙 높았는데, 타이트한 앞선 수비로 이길 수 있었죠.”

모비스에서 감독과 코치로 인연을 맺은 유재학(가운데)과 조동현. 사진 KBL

모비스에서 감독과 코치로 인연을 맺은 유재학(가운데)과 조동현. 사진 KBL

조동현(현 현대모비스 감독. 2013~15, 18~22 모비스 코치로 인연)
“2014년 대표팀 감독을 맡아 잠시 팀을 비우셨을 때 외국인 선수(로드 벤슨)가 훈련 중 농구공을 발로 찼어요. 타 구단 외국인 선수가 뒷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봐요. 주말에 유 감독님이 오셔서 바로 내쫓았죠. 원칙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유재학
“조 감독이 선수 때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문병을 갔더니 ‘절대안정’이라고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훈련장에서 제일 먼저 나와 공을 튕기는 선수가 조동현이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고. 저렇게 악착같이 하는데 저 친구는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줬죠. 대전고 시절에도 점심 먹고 자는 동료들이 깰까 봐 몰래 나와 훈련했다고 해요. 성실보다 값진 게 어디 있겠습니까.”

2012년 당시 유재학 감독과 함지훈. 중앙포토

2012년 당시 유재학 감독과 함지훈. 중앙포토

함지훈(현대모비스 포워드, 2007~2022 선수로 한솥밥)

“농구선수 함지훈은 유 감독님이 1부터 100까지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나비훈련(사이드 스텝과 동시에 팔도 움직이며 나비 모양을 만드는 훈련)은 엄청 힘들지만 지금은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원래 미국에 가시면 ‘천천히 돌아오시면 안될까’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십 몇년 만에 처음으로 비 시즌에 감독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유재학
“열 살 때 공을 잡고 쉼 없이 딱 50년을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일년에 두 세 차례 몸에 있는 작은 돌(요석)을 제거합니다. 휴식이 필요했어요. 집사람이 제발 걱정 말고 아무 생각 말고 좀 쉬라고 해요. 그런데 오늘도 농구장에 나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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