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임신했어" 이 말에 쫓겨나 모텔 전전…'고딩엄빠' 생존기 [밀실]

중앙일보

입력 2022.08.16 02:00

업데이트 2022.08.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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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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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생후 3개월 딸을 키우고 있는 이주연(17·가명)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밀실팀

지난 2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생후 3개월 딸을 키우고 있는 이주연(17·가명)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밀실팀


“희망아, 아빠가 능력이 많이 부족한데 일찍 널 만나게 됐어. 자랑스러운 아빠는 아니더라도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해.”  

밀실 <제95화> #10대 '고딩엄빠' 이야기

지난 2일 서울에 사는 박윤호(18·가명)씨가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에게 쓴 편지입니다. 박씨는 아내 이주연(17·가명)씨와 월세 30만원짜리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이씨가 쫓겨난 뒤로 모텔을 전전한 끝에 미혼모 지원단체에서 보증금 지원을 받아 얻은 집이라고 합니다. 박씨는 시장과 생선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비를 벌었다고 했습니다.

‘희망이’는 딸 아이의 태명.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직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10대 부부는 육아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이를 볼 땐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오랜 설득 끝에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저와 비슷한 청소년 부모들이 쭈뼛쭈뼛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최근 임신과 출산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육아 일상을 공유하는 청소년 부모들을 다룬 TV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어리지만 책임감 있다”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욕설이 담긴 악성 댓글도 적잖게 달렸습니다. TV에선 출산 사실을 ‘커밍아웃’하는 10대 청소년 부모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출산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못하고 숨죽여 사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중앙일보 밀실팀에서는 10대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을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금기되다시피 하는 청소년의 성·임신·출산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첫 회에서는 10대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청소년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매년 10대 산모 1000명 안팎 나온다

대전에 사는 한유나(18·가명)씨는 이번 달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고2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자퇴했고, 학교에는 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딛고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결국 못 받아들이셨다”며 “병원에서 아이 심장소리를 듣고 출산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10대 임신과 출산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1000명 안팎의 아이들이 10대 엄마에게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직접 키우는 10대 산모는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10대 청소년미혼모 고립 해소: 가정방문서비스 전면도입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0대 청소년 미혼모 1106명 중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사람은 268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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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는 입양되거나, 양육시설에 위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도 보호대상아동 중 미혼 부모·혼외자의 자녀로 국가에 위탁된 아동은 464명, 유기된 아동은 237명에 달했습니다. 입양을 신청한 18세 이하의 미혼모는 110명으로 전체 입양 신청자 수 540명의 20%를 차지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1000명 안팎의 10대가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실팀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1000명 안팎의 10대가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실팀

“부모와 연락 끊겼다”…출산 결정도 ‘험난’  

아름다운재단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이 청소년부모 315명(만 24살 이하)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청소년부모 생활실태조사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청소년 부모가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임신 중절과 입양을 권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실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이 청소년부모 315명(만 24살 이하)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청소년부모 생활실태조사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청소년 부모가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임신 중절과 입양을 권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실팀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면 임신 중절이나 입양을 권유받는 경우가 많았고 양육은 돕는 부모는 많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출산했다고 밝힌 윤다미(19·가명)씨는 “부모님은 아이를 지우거나 집을 나가라고 했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라며 “맨몸으로 나와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아이를 출산했다. 학생 신분이다 보니 일을 구하기 어려웠다. 당시엔 수입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최미라 여성인권동감 대표는 “10대라서 철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만나보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깊은 청소년 미혼모들이 많다”며 “기록이 남을 것이라는 걱정에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최 대표는 “경제적·사회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아이를 직접 키우려는 청소년 부모가 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양육 결심했지만…삼중고 겪는 10대 청소년 부모들

어렵게 출산과 양육을 결정한 ‘고딩엄빠’들은 학업중단,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의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이 만 24세 이하 청소년 부모 315명(평균 나이 18.7살)을 면접·설문 조사해 쓴 ‘청소년 부모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부모는 생활비 등 경제적 어려움(239명, 38.5%), 진로 및 취업 등 사회 복귀의 어려움(127명, 20.5%), 자녀를 위한 보육과 의료서비스 부족 (76명, 12.3%) 등을 호소했습니다. (복수 응답 허용)

같은 조사에서 청소년 부모의 월평균 수입은 ‘50만원 이내’가 82명(26%)으로 가장 많았고, ‘50만~100만원’ 65명(20.6%), ‘100만~150만원’ 51명(16.2%), ‘150만~200만원’ 46명(14.6%) 순이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딩엄빠’에 출연했던 ‘다둥이네’ 이혜리(21)·김윤배(24) 부부는 지난달 27일 밀실과의 인터뷰에서 “공사 현장에서 (김씨 혼자) 일해 하루 13만3000원, 5일간 일을 나간다고 했을 때 일주일 70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청소년 부모는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많이 힘들다. 돈을 모아 자립을 할 시기가 왔을 때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당부도 했습니다.

주거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씨는 같이 사는 5살 연상의 예비 남편이 홀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달에 180만원 수입 중 나가는 돈이 160만원 정도 된다. 집을 얻기 위해 대출받았는데, 상환하기 위한 지출이 한 달에 40만~50만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어린데 아이 낳았다” 부정적 시선에 상처 

2년 전 첫 출산을 하고 현재 두 아이를 키우는 나유리(18·가명)씨는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니니까 임신을 하지’라는 말이나 ‘아이가 불쌍하다’는 얘기가 가장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나씨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왕따를 시키거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출입을 금지하는 곳도 있어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 카페 가입도 어려웠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는 “아이 아빠와 어떻게 만났는지 노골적으로 묻는 사람도 많다”며 “떳떳하게 잘 키우고 있는데, 주변의 선입견에 시달리다 산후 우울증이 왔었다”고 말했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고민을 나누는 10대 엄마들도 있었습니다. 18세에 출산한 김지원(20·가명)씨는 10~20대 초반에 엄마가 된 10여 명과 출산 및 육아 문제를 소통하는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던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만든 공간”이라며 “현금을 선납하라는 산후조리원 관행 탓에 출산 지원 바우처를 못 쓰는 문제 등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까다로운 혼인신고, 어려운 ‘신청주의 복지’

이혜리(21)·김윤배(24) 부부는 “지원 정책을 몰랐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 LH 전세 임대 정책을 알게됐고, 7000만원 중 5%의 자부담인 350만 원을 모아 지금 사는 집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조사관은 “민간기관 등과 연결돼 지원을 받는 건 운이 좋은 경우”라며 “대부분 청소년 부모들의 상담 창구는 인터넷 공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청소년 한부모 가정은 아동양육비와 검정고시 학습비, 자립촉진 수당, 시설 생활보조금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청소년 부부’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청소년 부부가 법적으로 혼인했거나 사실혼일 경우, 청소년 한부모 지원도 신청할 수 없고 기초 생활 수급도 신청할 수 없어 사각지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현재 ‘청소년 부모’ 지원 정책은 시범사업 단계로, 추후 지원을 늘려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청소년 부모에게도 기회를 줘야”

지난 2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윤호(18·가명)씨가 생후 3개월 딸 '희망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았다. 밀실팀

지난 2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윤호(18·가명)씨가 생후 3개월 딸 '희망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았다. 밀실팀

밀실팀이 만난 청소년 부모들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았지만 책임감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희망이 아빠’ 박씨는 “아이와 장을 보러 가거나 지하철을 탈 때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유모차 자리도 비켜주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다”며 “다 똑같은 사람이니 신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미숙 국장은 “기회도 안 줘보고 우리는 계속 손가락질하는 게 우리 사회”라며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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