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악' 소리 나는 렌터카 요금…제주행 여객선에 내 차 싣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난달 15일 여행객들이 갱 웨이를 거쳐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오르고 있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매주 월· 수· 금 오후 7시에 인천항에서 제주항을 항해 출항한다. 심석용 기자

지난달 15일 여행객들이 갱 웨이를 거쳐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오르고 있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매주 월· 수· 금 오후 7시에 인천항에서 제주항을 항해 출항한다. 심석용 기자

지난 10일 오후 5시 30분쯤 인천항 여객터미널. 제주로 출항을 앞둔 여객선 앞은 인파로 북적였다. 선박과 육지를 잇는 램프는 승선을 준비하는 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양손에 짐가방을 든 여행객들은 ‘갱 웨이(gangway·육지와 배를 잇는 트랩)’에 길게 늘어섰다. 14시간 짧지 않은 거리지만 부모 손을 잡고 선박 곳곳을 두리번대는 아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미국인 등 승선객의 표장엔 기대감이 앞섰다. 수원에서 온 남모(37)씨는 “코로나19 여파로 그간 여행을 자제했다”라며 “4박 5일 가족 여행을 위해 자차를 끌고 배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비욘트 트러스트호에 오른 승객들이 출항 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는 뷔페식이다. 심석용 기자

지난 10일 비욘트 트러스트호에 오른 승객들이 출항 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는 뷔페식이다. 심석용 기자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유일한 여객선인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순풍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재취항한 뒤 승선객과 화물량이 크게 늘었다. 엔진 이상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믿고 탈 수 있겠느냐”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던 석 달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운영사인 하이덱스 스토리지에 따르면 ‘비욘드 트러스트호’의 승선객 수는 지난 5월 4133명, 6월 5940명으로 늘었고 지난달엔 7009명으로 급증했다. 재취항 전엔 3000명대였다. 승합차 등 화물 선적도 6월에 1만 7194t을 기록했고 지난달엔 2만t을 넘어섰다.

관광업계에선 거리 두기가 해제된 가운데 제주도 내 차량 렌터카 요금이 급등한 게 승선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업계에 따르면 7월 말~8월 초 성수기 기준 제주 2000cc급 중형 승용차 렌터카 비용은 평균 24시간당 17만~21만원 수준이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 무렵보다 두배 가까이 올랐다. 제주도가 교통혼잡을 해소하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9년 9월부터 도내 렌터카 차량을 2만8000~3만3300대 사이로 유지하는 렌터카 총량제를 시작하면서 렌터카 공급이 급증한 관광객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면 ‘비욘드 트러스트호’의 쏘나타 등 중형 승용차 선적 요금은 29만원(성수기 기준). 이렇다 보니 4~5일 이상 제주도에 머무르려는 여행객들에겐 ‘비행기 편+렌터카’에 비해 ‘배편+자차’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제주도로 5박 6일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황모(45·여)씨는 “할인 혜택을 다 받더라도 렌트 비용이 하루 13만원 이하로 낮출 수 없었다. 보험료까지 추가하면 그 이상”이라며 “익숙한 자차를 배에 싣고 가는 게 경제적이고 마음도 편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 여파로 일과 휴가를 결합한 ‘워케이션(Work+Vacation)’ 문화가 확산한 것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장기간 제주도에 머물면서 일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자차를 가지고 입도(入島)하는 비율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남에서 온 정모(45)씨는 “워케이션이라 가족과 함께 제주 한 달 살이를 하러 간다”며 “비싼 렌터카 비용 때문에 자차를 카페리에 싣는 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인천~제주 여행선 항로는 지난해 12월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취항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7년 8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그러나 지난 1월 엔진에 이상 징후가 포착돼 46일 만에 멈춰섰다. 엔진 부품을 바꾸고 노르웨이선급과 한국선급의 정밀 점검을 거친 뒤 2차례 해상 시운전을 통과하면서 100일 만에 다시 바다에 뜰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난 6일 출항을 앞둔 선박에서 이상 현상이 감지되면서 출항이 7시간 지연되는 일이 다시 발생했다. 운영사 측은 “실린더 누수 현상이 있어 교체하느라 출항이 늦어졌다. 운항엔 지장이 없지만 다른 부분까지 점검했고 이상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안전 리스크가 여전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제주항의 선석(항 내에서 선박을 정박하는 시설을 갖춘 장소) 부족으로 빚어지는 정박 전쟁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주로 하역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는 화물차나 차량에 실린 화물 등을 주로 싣는다고 한다. 선석 부족으로 제주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탓이다. 하선을 마친 뒤 바다로 나갔다가 재출항에 맞춰 다시 선석으로 들어오다 보니 안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태균 하이덱스 스토리지 사장은 “제주도가 제주 외항 국제 크루즈 1개 선석을 내항선 선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