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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향기로운 이를 기억하는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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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강원도 골(谷)은 깊어서 좋다. 13년 전 했던 약속을 지키려 1년에 두 번은 홍천의 행복공장수련원에 온다. 비 내린 뒤끝이라 양덕원천에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른다.

신라 의상스님이 지은 법성게에 ‘하나 속에 무한이 있고, 무한 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무한이요, 무한이 곧 하나이다(一卽一切 多卽一 一中一切 多中一)’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인연되어 존재하고(相卽),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相入)는 가르침이다. 한 사람에게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면 세상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공적역할이 큰 사람은 크게, 작은 사람은 작게 변화가 일어난다. 역할이 크든 작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외진 골짜기에서도 묵묵히 향기 나는 일을 한다면 그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다.

불교 전통수행법 ‘무문관 수행’
마음치유 공간 세우고 간 권용석
사회의 아픔 해결에 힘 보태려 한
진정한 향기로운 삶의 주인공

정갈하고 단정한 방에서 따뜻하고 세심하게 보살핌 받으며 편안하게 잘 쉬고 귀하고 놀라운 가르침 잘 받고 잘 깨우치고 갑니다. 진정 사랑하는 당신의 얼굴을 이제 모든 만물에서 보겠습니다. 다시는 이별하지도, 찾아헤맬 일도 없겠지요.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나를 이곳에서 구원하였습니다.(김**)

아무것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로 들어왔다가 말로 다 표현 못 할 깊은 이치와 가르침을 한가득 얻고 돌아갑니다. 혼자서, 맨몸으로, 순수하게 묻고 지극하게 찾아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정면 돌파 해봤던 적이 살면서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 가장 부족한 근육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존재를 내던져 은산철벽 너머의 본래면목에 다다르는 환희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아무의 도움 없이, 혼자 바장거리고 뒤척이면서 만들어낸 도움닫기에 자긍심과 떳떳함을 느낍니다. (정**)

무문관 참가자들의 소감문이다. 1.5평의 좁은 방, 손바닥만한 쪽문으로 하루 두 끼, 아침 죽과 점심밥이 들어온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그야말로 문이 없는 무문관이다.

아침 6시 30분,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에 맞추어 108배를 하고, 죽비소리에 가부좌 틀고 좌선에 든다. 오전 10시, 1시간 동안 수행의 마음을 촉발시키는 참선 방송강의를 듣고 좌선을 이어간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무문관은 함께 수행하지만 동시에 ‘혼자서’ 수행하는 특이한 구조의 공간이다. 본래 무문관은 스님들의 전통수행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년 이상 빗장 건 독방에서 좁은 틈으로 음식을 제공받으며 화두참구에 매진하는 폐관 수행방법이다.

행복공장에서는 일반인들을 위한 7일 동안의 일정으로 무문관 수행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세상에서 가져온 모든 것들을 벗어 놓는다. 핸드폰과 입고 온 옷, 읽고 있는 책도 다 맡기고, 수련복과 세면도구만 챙겨 독방으로 들어간다. 일주일 동안 1.5평에 스스로를 감금하기로 작정하고 찾아온 이들이다. 온전히 수행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15년 전쯤, 행복공장 설립자인 권용석 변호사가 참선집중수행을 위해 남도의 절로 찾아왔다. 그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검사시절 감옥에 들어가는 피의자들을 보면서 감옥체험을 미리 한다면 사회적인 사건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검사로 일주일에 100여 시간씩 격무에 시달리면서 피의자들처럼 나도 감옥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체험수련원을 만들어서 마음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약속을 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만들면 일 년에 두 번은 불교 전통수행법인 무문관 수행을 일반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21세기 가장 이상적인 감옥을 만드세요.’

권 변호사는 2009년, 극단 ‘연극공간- 해’의 대표이기도 한 부인 노지향 씨와 비영리단체 행복공장을 출범, 홍천수련원 빈숲을 만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비행을 저질러 검찰청에 출석한 아이들한테 부모에 관해 물어보면 이혼했거나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엄한 처벌을 한다고 이런 아이들이 바뀔까. 오히려 더 큰 ‘폭탄’이 되어 우리 사회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오늘 그가 만든 무문관에서 그를 기억하는 것은, 자기 삶의 만족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아픔을 고민하며 그 해결에 힘이 되고자 했던 향기로운 삶의 주인공이 사바를 떠난 지 100일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