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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생활 속 클래식, 마티네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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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지난 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젊은 현악 4중주단인 이든 콰르텟의 리사이틀을 봤다.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밤에 주로 들었던 베토벤 현악 4중주 13번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의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가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안 쓰던 감성의 근육을 사용한 느낌이었다.

음악회를 마치고 늦은 점심시간의 공복감을 채워준 맛있는 식사도 기분 좋았다. 저녁 공연 뒤의 늦은 밤 뒤풀이나 식사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지난달 30일 동일한 시간·장소에서 앨런 길버트가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정기공연이 펼쳐졌다. 앙코르까지 밤 공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던 밝은 낮의 연주회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주간에 열리는 음악회를 마티네(Matinee)라고 부른다. ‘아침’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탱(Matin)’에서 왔다. ‘야간흥행’이란 듯의 ‘수아레(soirée)’와 반대로 ‘주간흥행’이란 뜻이다. 오전 11시쯤 열리는 마티네는 주부나 노년층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직장인, 저녁 이후 영업하는 자영업자도 많이 늘어서 수요가 다양해졌다.

토요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토요콘서트 장면. [사진 예술의전당]

토요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토요콘서트 장면. [사진 예술의전당]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티네 콘서트는 매년 1월 1일 11시 15분에 빈 음악협회 황금홀에서 여는 빈 필의 신년 음악회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함께 박수를 치며 새해 행운을 빈다. 빈 필 정기공연은 마티네가 대세다. 2000년대 이후 낮 공연이 늘어나자 마티네를 일반 정기연주회로 바꾸고 저녁 공연만 ‘수아레’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티네 콘서트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서울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를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롯데콘서트홀·성남아트센터·고양아람누리 등 대표적인 공연장들이 정오를 전후해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마티네 공연을 편성했고 현재도 순항 중이다. 예컨대 18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2 마티네 콘서트는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사회로 김광현 지휘 경기필하모닉이 연주하는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라이트 등으로 꾸며진다.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토요콘서트’에서는 지중배가 지휘하는 국립심포니가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선보이고 25일 고양아람누리 ‘김현수의 스윗클래식’에서는 김광현이 지휘하는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등을 연주한다.

마티네 콘서트는 예술의 생활화에 이바지한다. 이웃집에 마실 가듯 자연스럽게 클래식 공연장에 가게 해 준다. 이럴 때 대중교통이나 주차의 편리성은 기본이고, 연주회 후 청중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나 쇼핑 공간, 카페 등 공연장 주변 시설의 중요성이 커진다. 내년에 문 여는 부천아트센터나 2025년 개관 목표인 부산국제아트센터 등 새 연주홀들의 연계 시설이 더욱 편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