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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한국 현대사 ‘자유로의 여정’ 규정…“일본은 힘 합칠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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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시, 자유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를 33번 말했다. 5월 10일 취임사 때 자유를 35번 언급한 지 석 달여 만이다. 취임 연설에서 ‘번영과 풍요의 토대가 되는 적극적 의미’로서 자유를 강조했다면, 이날 경축사에선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유를 소환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한국 현대사를 독립 정신에 입각한,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여정으로 정리한 데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재규정하면서 경축사를 풀어갔다. 윤 대통령은 “일제 때의 독립운동은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며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45년 바로 오늘, 광복의 결실을 이뤄냈지만,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어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돼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며 “독립운동은 그 성격과 시대적 사명을 달리하며 진행돼온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재해석했다.

자유 확대가 ‘현재 이어지는 독립운동’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 참석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며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 참석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며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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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力動的), 지금도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과정으로서의 독립운동에 대해 윤 대통령은 “자유를 찾고,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고, 또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자유에 대한 새로운 위협과 싸우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뤄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확대하고 지키는 것이 ‘현재도 이어지는 독립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복→건국→산업화→민주화’로 요약되는 한국 현대사 일련의 무대를 언급하며 자유를 재차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신 분들”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 “진정한 자유의 경제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신 산업의 역군과 지도자들”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해오신 분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이런 분들이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독립운동가”라고 말했다. 자유를 키워드로 모든 이들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도 읽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유를 통한 한국 현대사 재해석으로, 매년 8·15 때마다 불거졌던 ‘광복이냐 건국이냐’는 논쟁의 여지가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 내내 ‘건국’이란 단어를 한 번밖에 안 쓰면서도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의지도 자유의 연장선에서 설명했다. 일본에 대해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라고 언급한 윤 대통령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말했다. 기존 ‘가장 가까운 이웃’에 비해 강력한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 키워드

윤석열 대통령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 키워드

대일 관계의 해법으로 삼았던 ‘선(先) 과거사 문제 해결, 후(後) 화해 협력’의 기조도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말로 대체됐다. ‘선 미래 지향, 후 과거사 해결’로 전환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채택한 합의문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한·일 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여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면서다.

DJ-오부치 선언 계승 의지도 강조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히는 내용의 과거사 인식을 포함해 총 11개 항으로 구성됐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최초로 일본 총리의 사과가 외교 문서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수차례에 걸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강조한 것은 과거사 문제를 사법적 절차가 아닌 외교적 협의로 풀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 개선을 이끌자는 의미다.

경축사 말미에서도 자유는 강조됐다. 윤 대통령은 “자유·인권·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연대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책임 있게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의 뜻을 이어가고 지키는 것”이라며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에게 부여된 이 세계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연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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