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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대출 약한 고리 더 위태…다중채무자 비중 역대 최대치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가계 빚의 약한 고리가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금융 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비중이 2012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특히 2030세대와 중·저소득자 등 대출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린 경우가 늘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시장 금리 등의 급등 속 금융 안정을 흔들 수 있는 뇌관의 폭발력이 커지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대출자 중 22.4%가 다중채무자다. 지난해 말(22.1%)보다 0.3%포인트 늘었고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대출자 수가 아닌 대출 잔액 기준으로 따지면 다중채무 비중은 31.9%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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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은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 패널 약 100만명의 신용정보를 분석한 결과다. 이 비중을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자 수(1989만4000명)에 적용하면 445만6000여명이 다중채무자로 추산된다.

다중채무자 수와 잔액이 늘어난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대출 취약계층에서 두드러지는 다중채무자 비중 증가세다. 1분기 말 기준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40대의 비중이 32.6%로 가장 높았다. 50대(28%)와 30대 이하(26.8%), 60대 이상(12.6%) 순이다.

이 중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비중이 지난해 말보다 0.6%포인트 늘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60대 이상은 0.3%포인트 증가, 50대는 0.2%포인트 늘어난 반면 40대는 1.1%포인트 감소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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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수준에 따른 다중채무자 비중 변화는 고소득자와 중·저소득자의 추이가 엇갈린다. 소득 상위 30%의 고소득자는 다중채무자의 65.6%를 차지해 비중이 가장 높지만 지난해 말보다는 0.3%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중소득자(소득 상위 30~70%) 비중은 0.2%포인트 늘어나며 25%를 차지했고, 저소득자(소득 하위 30%) 비중은 0.1%포인트 증가해 9.4%를 기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상기에 고소득자는 여윳돈으로 대출 원금을 상환해 이자 부담을 줄여나가지만 중·저소득자는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오히려 생계용 자금을 고금리로 빌려야 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중채무자가 몰려 있는 금융회사는 저축은행이다. 1분기 말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 중 76.8%가 저축은행이 집중됐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은행과 상호금융, 보험사, 여전사(카드사) 등의 1분기 말 다중채무자 대출 잔액은 모두 감소했지만 저축은행만 0.9%포인트 늘었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탓에 금리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으로 다중채무자가 갔다는 의미다.

문제는 금리 부담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시중은행이 연 4.23%, 저축은행이 연 9.79%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배 이상 높다. 15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금리는 신용점수가 600점 이하인 저신용자 기준 법정 최고금리(연 20%)에 근접한 연 19.9%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취약 계층의 빚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위험하게 진단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6월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의 수가 늘고 있다”며 “금리 상승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대내·외 여건까지 나빠질 경우 청년층, 자영업자 등을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의원은 "다중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청년, 저소득층이 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런 취약 차주들의 고금리 대출을 재조정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이자 상환 유예 같은 금융방안에 더해 재정 지원 등 계층별 맞춤형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중채무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중은행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15일 “신용대출 금리가 연 7%를 초과하는 다중채무자의 금리를 1년간 연 7%로(최대 1.5%포인트) 낮춰준다”고 발표했다. 지원 대상은 지난달 말 기준 금리 연 7%가 넘는 신용대출이 있는 다중채무자다.

예를 들어 신용대출 금리가 연 9%인 경우 1.5%포인트 금리 인하를 적용해 연 7.5%로 낮춰주고, 연 8% 금리가 적용되는 다중채무자의 경우 연 7%로 인하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신한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중 다중채무자인 약 7만2000명이 7500억원 규모의 혜택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지난 1일부터 연체 없이 빚을 갚아온 다중채무자의 원금을 감면해주는 혜택을 도입했다. 금리 연 6%가 넘는 대출을 상환 중인 다중채무자가 연체 없이 빚을 갚으면 6%를 초과해 낸 이자만큼 원금을 감면해주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취약차주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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