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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맨발로 뛰었고, 경호원은 총쏠뻔…1년전 카불 그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탈레반에 항복하는 굴욕을 피하고 싶었다.”

이슬람 강경 무장조직인 탈레반 집권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이끌었던 아슈라프 가니(73) 전 대통령이 수도 카불 함락 1주년을 앞둔 지난 14일(현지시간) CNN과 화상 인터뷰에서 나라와 국민을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이렇게 항변했다.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지난 2020년 11월 19일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지난 2020년 11월 19일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간 前 대통령 "지지받는 젤렌스키 정부와 달라"

그는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대통령궁을 떠났다"면서 "나는 탈레반을 두려워한 적은 없다. 다만 탈레반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다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모욕하고, 정부의 정당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주고 싶지 않아 떠났다"고 강조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가니 전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특히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상황과 비교하며 자신의 탈출을 합리화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받았고, 젤렌스키 정부는 그런 국제적인 지지로 인해 더 성공적으로 대항했다"면서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 철군을 발표한 후,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니 전 대통령은 미국에 ‘배신’당했다고 말하기는 거부했다. 그는 "(배신과 같은) 그런 종류의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면서 "배신이나 비난의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지금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뜻도 비쳤다.

가니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헬기를 타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무르고 있다.

美보고서 "가니 대통령, 맨발로 헬기 타고 탈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일행이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을 피해 수도 카불을 탈출할 때 사용한 밀Mi-17 헬리콥터 내부 구조 모습. 사진 SIGAR 보고서 캡처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일행이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을 피해 수도 카불을 탈출할 때 사용한 밀Mi-17 헬리콥터 내부 구조 모습. 사진 SIGAR 보고서 캡처

가니 전 대통령은 ‘탈출 1년 인터뷰’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 정부 기관 아프가니스탄재건감사관실(SIGAR)이 지난 9일 발표한 최종보고서에는 탈레반의 카불 입성에 혼비백산한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SIGAR은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을 감사하는 독립 기관으로 지난 2001년 이후 관련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왔다. 이번 보고서는 SIGAR의 마지막 보고서로 카불 탈출 당시 현장에 있거나 사안에 정통한 아프가니스탄 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가니 전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 고위 관리들의 자금 절도 혐의를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5일 오전 가니 정부를 이끌던 많은 장·차관들이 카불을 떠났고, 대통령궁에서 일하던 수천 명의 사람이 도망쳤다. 대통령궁에는 가니 전 대통령 부부와 측근 일부, 경호실 인력 등 50여명만 남았다. 측근들이 가니 전 대통령에게 "헬기를 타지 않으면 살해될 것"이라고 하자, 그는 맨발로 다급하게 헬기에 올랐다. 그의 경호실장이 신발을 찾았다고 한다. 정원 초과로 헬기에 탑승하지 못한 한 경호원이 총으로 헬기를 겨냥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날 뻔했다.

가니 일행, 도피 때 50만 달러만 챙긴 듯 

SIGAR은 가니 전 대통령이 도피할 당시 현금 1억6900만 달러(약 2207억원)를 소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평가했다. SIGAR은 가니 전 대통령 일행이 현금 50만 달러(약 6억5000만원) 정도만 헬기에 실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 현금은 경호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자신들이 관리하던 예산을 챙겨온 것으로 조사됐다. SIGAR은 1억6900만 달러라면 무게가 거의 2t에 달해 헬기에 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가니 전 대통령도 이 같은 의혹을 줄곧 부인했다.

가니 전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UAE로 도피한 후, 처음 수개월은 아부다비의 5성급 호텔인 세인트 레지스에서 체류하고 이후엔 UAE가 제공한 개인 저택에 살아 빈축을 샀다. 이에 대해 가니의 변호인은 SIGAR에 가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전문직으로 경력을 쌓으면서 축적된 자산이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자 출신인 가니 전 대통령은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뒤 아프가니스탄 재무부 장관을 거쳐 2014년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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