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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시다, 야스쿠니에 공물 봉납...'가해 책임' 언급은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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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일(패전일)인 15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취임 후 첫 종전일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의 '가해 책임'을 인정하는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자민당 총재' 명의로 제단에 바치는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에 흰 종이를 단 것) 비용을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했다. 비용은 사비로 지출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은 지난 4월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에 이어 두 번째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東京)도 지요다(千代田)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전국전몰자추도식' 연설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 결연한 다짐을 앞으로도 관철해 나갈 것"이라고 부전(不戦)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어 "아직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일본)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 아래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전임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같은 행사에서 언급했던 개념이다. 일본이 자력으로 안보를 지키며 국제사회 평화에 공헌하겠다는 뜻으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자는 개헌 추진의 명분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기시다 총리의 이날 연설에는 일본이 전쟁으로 아시아 각국에 입힌 피해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는 담기지 않았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 역대 총리들은 종전일 연설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인한 아시아 각국의 피해를 언급하며 '손해와 고통', '반성' 등의 표현을 계승해왔다. 그러나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 출범 이후, 총리의 종전일 연설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 후 첫 종전일 추도사를 통해 보수·극우층의 지지를 받아온 아베 전 총리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교도통신은 이날 기시다 총리 추도사의 표현과 구성이 아베와 스가 전 총리 시절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복사해서 붙인 수준'이었다면서 "기시다의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나루히토 일왕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나루히토 일왕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즉위 후 네 번째로 종전일 행사에 참석한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4년 연속 '깊은 반성'을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연설에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언급하며 "힘을 모아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도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계속 희구해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언급했다.

현직 각료 3명 야스쿠니 참배  

기시다 내각 현직 각료 중에는 3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스가 정권이던 지난해 5명이 참배한 데서 두 명 줄었다. 13일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이 가장 먼저 야스쿠니를 찾았고, 15일 오전에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전보장 담당상과 아키바 겐야(秋葉賢也) 부흥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방문해 참배했다.

일본 현직 각료가 종전일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2020년과 2021년에 이어 3년 연속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전보장 담당상이 15일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전보장 담당상이 15일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 개각 전까지 경제산업상을 지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집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전 환경상도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 명의 영령을 기리는 시설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合祀)돼 있다. 따라서 내각 구성원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15일 논평을 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정부와 의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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