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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버스] 제77주년 광복절...우리의 상징 태극기 의미 되새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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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주년 광복절을 통해 되돌아본 태극기의 역사. 왼쪽은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태극기이며 오른쪽은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 회원들이 혈서로 '대한독립'을 쓴 태극기입니다. 김경록 기자

제77주년 광복절을 통해 되돌아본 태극기의 역사. 왼쪽은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태극기이며 오른쪽은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 회원들이 혈서로 '대한독립'을 쓴 태극기입니다. 김경록 기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축하하기 위한 날,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77년 전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오랫동안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찾은 선조들이 만세를 부르며 힘껏 흔들었던 태극기. 대한민국의 역사와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이 담겨있는 태극기를 광복절을 맞아 그 의미를 되돌아봤습니다.

독립운동의 거점 사찰이었던 진관사에 전시된 태극기. 김경록 기자

독립운동의 거점 사찰이었던 진관사에 전시된 태극기. 김경록 기자

태극기 얼룩 부분. 6.25 전쟁 당시 진관사 폭격에 의한 그을음 자국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김경록 기자

태극기 얼룩 부분. 6.25 전쟁 당시 진관사 폭격에 의한 그을음 자국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김경록 기자

진관사 태극기 

천년 고찰 서울 은평구 북한산 진관사엔 '진관사 태극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태극기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사찰 부속 건물인 칠성각 보수 공사 중에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됐습니다.
수습 당시 독립신문류 5종 19점을 싸매고 있었고 불에 타 손상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1919년 3·1운동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고,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 부분과 사괘를 먹으로 덧칠해 만든 점이 특징입니다.

데니 태극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데니 태극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데니 태극기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가로 262㎝·세로 182.5㎝로 옛 태극기 중 가장 큽니다.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가 1891년 1월 조선을 떠난 미국인 오웬니커슨 데니(1838∼1900) 소장품이었습니다. 고종이 1890년쯤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전하며, 데니 후손이 1981년 한국에 기증했습니다.
서양 국기 제작 방법을 참조해 태극과 사괘는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정교하게 박음질해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경록 기자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경록 기자

김구는 태극기에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쓰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긴 작은 도장을 찍었다. 김경록 기자

김구는 태극기에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쓰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긴 작은 도장을 찍었다. 김경록 기자

김구 서명문 태극기 

천안 독립기념관에 가면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1941년 3월 16일 중국에서 글을 적어 벨기에 신부 매우사에게 준 유물입니다. 매우사 신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 '안창호 유품' 중 일부로 1985년 3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비단에 청색과 홍색 천으로 태극을 붙이고 검은색 천으로 사괘를 덧대어 만들었습니다. 오른편엔 김구 선생이 쓴 광복에 대한 염원이 담긴 친필 목서가 쓰여 있습니다.

태극기 목판. 김경록 기자

태극기 목판. 김경록 기자

측면에서 본 목판. 김경록 기자

측면에서 본 목판. 김경록 기자

태극기 목판 

이번엔 태극기 목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보급하기 위해 제작된 목판입니다. 가로 32cm, 세로 30cm, 두께 6.5cm이며, 인쇄용이기 때문에 태극과 사괘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판은 당시 태극기 제작과 관련한 기법적 측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입니다.

불원복 태극기. 오른편엔 태극기를 깃대에 묶기 위한 부분도 보입니다. 김경록 기자

불원복 태극기. 오른편엔 태극기를 깃대에 묶기 위한 부분도 보입니다. 김경록 기자

자수로 된 불원복 글자. 김경록 기자

자수로 된 불원복 글자. 김경록 기자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입니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담긴 '不遠復'(불원복) 붉은색 글자가 상단에 수놓아져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 뒤로 보이는 혈서 태극기. 김경록 기자

안중근 의사 동상 뒤로 보이는 혈서 태극기. 김경록 기자

안중근 의사 뒤로 설치된 대형 태극기. 제2전시실에 가면 원본 크기의 태극기도 있습니다. 김경록 기자

안중근 의사 뒤로 설치된 대형 태극기. 제2전시실에 가면 원본 크기의 태극기도 있습니다. 김경록 기자

안중근 의사 혈서 태극기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 동상과 대형 혈서 태극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1명의 항일투사와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왼손 약지를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을 새겼습니다.

 광복군서명 태극기. 김경록 기자

광복군서명 태극기. 김경록 기자

태극기에 그려진 그림. 김경록 기자

태극기에 그려진 그림. 김경록 기자

곤괘 사이사이에 쓰여진 문구. 김경록 기자

곤괘 사이사이에 쓰여진 문구. 김경록 기자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간직한 태극기입니다. 바탕에 결의를 다지는 광복군들이 쓴 글귀와 서명이 빼곡히 적혀 있고 나라 사랑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삼각형 형태인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김경록 기자

삼각형 형태인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김경록 기자

'대한독립만세'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김경록 기자

'대한독립만세'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김경록 기자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흔치 않은 삼각형 모양입니다. ­크기도 71.1cmx27.8cm로 작은 편입니다. 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 속에 제작된 태극기로 미국에서 광복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태극기 변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봉오동전투 태극기. 김경록 기자

봉오동전투 태극기. 김경록 기자

남상락 자수 태극기. 김경록 기자

남상락 자수 태극기. 김경록 기자

국가등록문화재인 태극기는 이외에도 1920년 봉오동전투 당시 독립군의 핏자국이 남은 봉오동전투 태극기,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남상락 자수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 20여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초 속에 살아남아 후손에게 전해진 태극기, 1883년 국기로 제정된 이후 130여년의 대한민국 역사의 자랑스러운 상징입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 관련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 관련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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