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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권력연합 깨지고 잘된 정권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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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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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된 윤석열 정권은 왜 이렇게 헤매고 있는가. 이미 여러 분석이 나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정권의 태생이 ‘권력연합’이란 점을 망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대선 시즌이 개막할 무렵 여야 주요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가 가장 높았던 후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었다. 가장 강력한 비토 세력이 있었음에도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든 정권을 바꿔보려는 ‘반문재인 연합’의 의지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준석 축출로 이대남 반윤 선회 #윤정권 지지기반 한 축 무너진 셈 #역대 정권, 동업자 결별 후 내리막

과거의 ‘권력연합’이 지역 기반이었다면 ‘반문재인 연합’은 이대남(20대 남성층)과 50대 이상의 세대 간 연대라는 초유의 특성을 갖고 있다. 우파적 특성이 강하다곤 하지만 꼰대라면 질색하는 이대남이 국민의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준석이란 문제적 인물을 빼놓곤 설명하기 어렵다. 일찍이 정치권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돌한 캐릭터는 윗세대가 볼 땐 ‘싸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지만, 오히려 그런 특성이 이대남을 열광케 했다. 이 대표의 영향력 아래 똘똘 뭉친 이대남은 대선 기간 내내 온라인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역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보수가 진보에 온라인 화력이 밀리지 않았던 것은 이대남의 기여도가 절대적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뉴스1]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되자 이대남은 순식간에 반윤석열로 돌아섰다. 윤석열 정권 입장에선 단순히 20대의 지지율이 빠진 것보다, 각종 이슈가 생길 때마다 비판 진영의 공세에 무방비로 난타당하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하다. 보수의 온라인 전사였던 이대남이 윤석열 정권을 방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권을 향해 창 끝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마치 권력이 고립무원에 빠졌던 박근혜 정부 말기 때를 보는 듯하다. 윤 대통령 주변의 ‘윤핵관’이나 검찰 출신들은 여론 형성에서 과연 정권에 어떤 보탬이 되고 있는가.

과거에도 대부분의 정권이 권력연합을 해체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김종필(JP) 총재를 민자당에서 내쫓으면서 기울어졌고,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DJP 연합이 깨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지만 나중에 호남 민심이 이탈하자 정권이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친박 제거를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으면서 국정 운영에 두고두고 애를 먹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 때 비박(非朴) 숙청을 노렸다가 서로 공멸하는 참사를 빚었다.

18대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23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박계 공천학살에 대해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앙포토]

18대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23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박계 공천학살에 대해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앙포토]

반면에 권력연합 관리의 모범사례는 문재인 정권이다. 호남과 불화를 빚으며 몰락했던 노무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 문 전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호남 챙기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낙연 전남지사를 총리에 발탁한 것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장ㆍ정책실장ㆍ사회부총리ㆍ법무부 장관ㆍ검찰총장ㆍ경찰청장ㆍ방통위원장 등 주요 권력 포스트에 호남 출신을 대거 기용했다. 한때 검찰 핵심 요직인 ‘빅4’가 모두 호남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을 쥐어짜 나주에 한전공대를 세우는 '성의'도 보였다. 지역 편중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문 전 대통령이 전임자들과 달리 임기 막판까지 급격한 지지율 붕괴를 겪지 않은 건 ‘86세대+호남’의 권력연합을 끝까지 잘 보존한 덕택이다.

1995년 1월 19일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김종필(JP) 민자당 대표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직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JP는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김영삼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렸다.  [중앙포토]

1995년 1월 19일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김종필(JP) 민자당 대표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직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JP는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김영삼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렸다. [중앙포토]

한 표가 아쉬운 선거 때는 어떻게든 내 편에 붙잡아 두려 하지만, 집권하고 나면 동업자의 존재 자체가 영 껄끄러운 게 권력의 생리다. 동업자가 ‘내부 총질’의 달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에 대한 개인 감정이 아무리 불편해도 대선에서 고작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한 정권이라면 지지층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했어야 한다. 집권하자마자 아무 대안도 없이 권력연합의 한쪽 다리를 잘라낸 것은 두고두고 국정에 부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