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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초상 아래 쓰인 ‘희망’…포스터로 세상을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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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환경 문제를 다룬 신작 ‘마음을 열어라(Open Minds)’ 앞에 선 셰퍼드 페어리. [뉴시스]

환경 문제를 다룬 신작 ‘마음을 열어라(Open Minds)’ 앞에 선 셰퍼드 페어리. [뉴시스]

화가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는 작품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초상화 포스터도 그중 하나다. 오바마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에 ‘희망(HOPE)’이라고 쓰인 이 그림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포스터와 스티커로 제작돼 전세계인 뇌리에 각인됐다. 이 포스터는  미국 워싱턴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소장됐다.

이 포스터를 만든 미국 작가 셰퍼드 페어리(52)의 대규모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11월 7일까지)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페어리는 대학(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시절 스케이트보드 스티커를 만든 것으로 시작해 2020년 시사전문지 ‘타임(TIME)’지 커버에 ‘타임’이라는 글자 대신 ‘선거하라(VOTE)’를 넣은 역사적인 포스터까지 활동 반경을 확장해온 사회활동가이자 아티스트다. 광고, 선전 그래픽과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왔다.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1988. 존 카펜터 감독)에 등장하는 ‘복종하라(OBEY)’는 슬로건을 작품에 사용해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베이 자이언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구로 보는 이들이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예술 실험이자 캠페인이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버락 오바마 공식 포스터. [사진 롯데뮤지엄]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버락 오바마 공식 포스터. [사진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에선 초기작부터 영상, 사진 자료, 벽화 등 총 470여 점을 소개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기념하며 ‘환경과 희망’을 주제로 롯데월드타워 1층과 강남 도산대로, 성수동 피치스 도원 등 다섯 곳에 대형벽화를 제작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페어리는 “SNS나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부터 포스터는 내 생각을 선전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였다”며 “포스터를 통해 세상의 수많은 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외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희망’ 포스터로 유명하다.
“사진작가 매니 가르시아가 찍은 오바마 사진을 바탕으로 그의 초상에 진보(progress)라는 단어를 넣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거리에 배포했다. 이게 널리 알려지면서 오바마 선거 캠프의 요청으로 ‘진보’를 ‘희망’으로 바꾼 뒤 공식 캠페인 포스터로 선정됐다. 원색의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고, 단순 명료하고 강렬한 구성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작품에 히잡 두른 여성들이 많더라.
“다양한 인종의 여성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돌아보자는 뜻을 담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다룬 것엔 민족과 문화, 종교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지미 헨드릭스(1942~1970), 밥 말리(1945~1981), 투팍 샤커(1971~1996) 등 다양한 뮤지션 초상 작업을 많이 한 이유는.
“펑크 록과 힙합은 독창성과 창의성이 중심이 된 아웃사이더 문화다. 이 음악들엔 ‘직접 내 스스로 하는’ DIY(do-it-yourself) 철학이 깔려 있는데, 아무리 미숙하고 미미하더라도 ‘일단 한번 해보자’라는 메시지가 내게도 많은 용기를 줬다.”
신작 ‘눈을 떠라(Eyes Open)’, 2021. [사진 롯데뮤지엄]

신작 ‘눈을 떠라(Eyes Open)’, 2021. [사진 롯데뮤지엄]

초상화엔 사회적 투사(鬪士) 이미지, 바탕에 꽃과 동양적 패턴이 많다.
“부패한 정치, 다양한 대상에 대한 차별, 환경오염, 혐오 범죄 등으로부터 내 신념을 지키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연꽃이나 장미로 표현해왔다. 특히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뜻하는 만다라 문양은 인류와 지구의 조화, 이상적인 삶의 상징으로 자주 쓰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회 이슈까지 다루고 있다.
“내가 길거리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트리트 아트는 하나의 장르도, 널리 사용하는 용어도 아니었다. 거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나만의 방식으로 시작한 그라피티 작업을 하며 이미지의 반복적인 노출과 전파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지 알게 됐다. 내 작업이 이 장르를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기쁘겠다.”
앙드레 자이언트 초상을 변형한 ‘Repetition Works’, 2011. [사진 롯데뮤지엄]

앙드레 자이언트 초상을 변형한 ‘Repetition Works’, 2011. [사진 롯데뮤지엄]

작품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겐 그것이 정의다. 예술로 올바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품의 심미적 요소와 상징, 아이디어를 통해 이런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작품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나의 감성으로 걸러내고 개발해온 것”이라며 “내게 영감을 준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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