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스티커에서 오버마 포스터까지, 간결하고 힘있는 외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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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락 오마바 대선 캠프에서 공식 포스터로 쓰인 셰퍼드 페어리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2008년 버락 오마바 대선 캠프에서 공식 포스터로 쓰인 셰퍼드 페어리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눈을 떠라, 2021.[사진 롯데뮤지엄]

눈을 떠라, 2021.[사진 롯데뮤지엄]

화가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는 그림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초상화 포스터도 그중 하나다. 오바마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에 '희망(HOPE)이라고 쓰인 이 그림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포스터와 스티커로 제작돼 전세계인 뇌리에 각인됐다. 이 포스터는 2009년 런던디자인뮤지엄의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즈(Brit Insurance Design Award)에서 올해의 디자인으로 선정됐고, 미국 워싱턴 국립초상화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에 소장됐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개인전 #초기작부터, 신작, 벽화까지 470점 #꽃에서 강력한 여성 전사들 초상까지

광고, 선전 그래픽과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온 미국 작가 셰퍼드 페어리(52)의 대규모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11월 7일까지)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페어리는 대학(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시절 스케이트보드 스티커를 만든 것으로 시작해 2020년 시사전문지 '타임(TIME)'지 커버에 '타임'이라는 글자 대신 '선거하라(VOTE)'를 넣은 역사적인 포스터까지 활동 반경을 확장해온 사회활동가이자 아티스트다. 이번 전시에선 초기작부터 영상, 협업, 사진 자료, 신작 등 총 470여 점을 소개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기념하며 '환경과 희망'을 주제로 롯데월드타워 1층과 강남 도산대로, 성수동 피치스 도원 등 다섯 곳에 대형벽화를 제작했다.

페어리의 작품엔 단순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반복되고 간결한 메시지가 힘있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발부터 그랬다. 1989년 프랑스 전설의 거구 프로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1945~1993) 초상을 모티브로 친구들과 함께 제작한 스티커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루시모프의 초상은 상표권 분쟁으로 더이상 사용하지 못했지만,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1988. 존 카펜터 감독)에 등장하는 '복종하라(OBEY)'는 슬로건을 작품에 사용하며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바람을 일으켰다. '오베이 자이언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구로 보는 이들이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예술 실험이자 캠페인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페어리는 "SNS나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부터 포스터는 내 생각을 선전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였다"며 "포스터를 통해 세상의 수많은 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외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롯데뮤지엄 전시장에 선 작가 셰퍼드 페어리. [뉴시스]

서울 롯데뮤지엄 전시장에 선 작가 셰퍼드 페어리. [뉴시스]

히잡 쓴 여성들을 더룬 셰퍼드 페어리 작품. 여성의 힘을 강력하고 우아하게 표현했다. [이은주 기자]

히잡 쓴 여성들을 더룬 셰퍼드 페어리 작품. 여성의 힘을 강력하고 우아하게 표현했다. [이은주 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전시 현장. [이은주 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전시 현장. [이은주 기자]

셰퍼드 페어리 작품 'Peace Girl', 2005. '전쟁 말고 평화를 만들라'라고 쓰여 있다. 사진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작품 'Peace Girl', 2005. '전쟁 말고 평화를 만들라'라고 쓰여 있다. 사진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작품 '지구 위기(Earth Crisis)', 2019. [사진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작품 '지구 위기(Earth Crisis)', 2019. [사진 롯데뮤지엄]

오바마의 '희망' 포스터로 명성을 더욱 굳혔다. 
사진작가 매니 가르시아가 찍은 오바마 사진을 바탕으로 그의 초상에 진보(progress)라는 단어를 넣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거리에 배포했다. 이게 널리 알려지면서 오바마 선거 캠프의 요청으로 '진보'를 '희망'으로 바꾼 뒤 공식 캠페인 포스터로 선정됐다. 원색의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고, 단순 명료하고 강렬한 구성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히잡 두른 여성들이 작품에 매우 많더라.
다양한 인종의 여성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돌아보자는 뜻을 담았다. 히잡을 두른 여성도 있고, 실제 인권 운동가 초상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다룬 것엔 민족과 문화, 종교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지미 헨드릭스(1942~1970), 밥 말리(1945~1981), 투팍 샤커(1971~1996) 등 다양한 뮤지션 초상 작업을 많이 한 이유는. 
펑크 록과 힙합은 독창성과 창의성이 중심이 된 아웃사이더 문화다. 이 음악들엔 ‘직접 내 스스로 하는’ DIY(do-it-yourself) 철학이 깔려 있는데, 아무리 미숙하고 미미하더라도 ‘일단 한번 해보자’라는 메시지가 내게도 많은 용기를 줬다. 
초상화엔 사회적 투사(鬪士) 이미지, 바탕에 꽃과 동양적 패턴이 많다.  
부패한 정치, 다양한 대상에 대한 차별, 환경오염, 혐오 범죄 등으로부터 내 신념을 지키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연꽃이나 장미로 표현해왔다. 특히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뜻하는 만다라 문양은 인류와 지구의 조화, 이상적인 삶의 상징으로 자주 쓰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회 이슈까지 다루고 있다. 
내가 길거리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트리트 아트는 하나의 장르도, 널리 사용하는 용어도 아니었다. 거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나만의 방식으로 시작한 그라피티 작업을 하며 이미지의 반복적인 노출과 전파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지 알게 됐다. 내 작업이 이 장르를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기쁘겠다.
작업을 해오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
30년 전 거리미술(스트리트 아트)은 사회적으로 불법적인 도시문제 중 하나였다. 저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끊임없이 작업해오며 현재 거리미술은 하나의 현대미술로 자리 잡았다.
작품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겐 그것이 정의(justice)다. 예술로 올바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품의 심미적 요소와 상징, 아이디어를 통해 이런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작품은 저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저의 감성으로 걸러내고 개발해온 것"이라며 "내게 영감을 준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바바라 크루거 등 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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