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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못 뜨자 산 넘고 물 건넜다…산사태도 막지 못한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9일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경기도 양평군의 한 가정집을 덮쳤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물이 불어난 개천을 건너기 위해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있다. 양평소방서

지난 9일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경기도 양평군의 한 가정집을 덮쳤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물이 불어난 개천을 건너기 위해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있다. 양평소방서

산사태로 붕괴한 집에 고립된 60대 남성을 구조한 소방관들이 화제다. 이들은 집중호우로 길이 사라지면서 고립된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강행군을 펼쳤다.

안전로프 하나에 몸 의지해 개천 건너고 산 넘어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 9일 오전 4시 32분쯤 경기도 양평소방서 상황실로 한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졌는데 남편이 집 안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평소방서는 상황이 급박하다 판단하고 구조·구급 등 23명의 출동팀을 구성해 신고가 접수된 양평군 단월면 삼가리로 향했다.

양평군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이다.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가 발생하거나 물이 불어나 마을이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 현장으로 가는 길은 산사태로 인한 토사 유출로 도로가 사라진 상태였다. 마을까지 구급차 등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헬기 운항은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 급한 대로 굴착기를 동원해 진입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고민하던 소방대원들은 고립된 마을 주변에 있는 야산을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비와 진흙탕이 된 바닥을 헤치며 마을 근처에 도착했지만, 또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돌다리로 건널 수 있던 개천이 폭우로 물이 불어나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구조대원들은 주변 나무에 안전 로프를 설치하고, 이 로프에 의지해 하나씩 개천을 건너기 시작했다.

흙더미 속에서 발견된 60대, 생명엔 지장 없어

도착한 현장은 참담했다. 집 안까지 토사가 가득했다. 아내 A씨(60대)는 집이 붕괴하기 전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집 안에 있던 남편 B씨(60대)는 대피하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였다. A씨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남편을 살려달라”고 사정했다.
집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큰 소리로 B씨를 찾았다. 다행히 의식이 있던 B씨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B씨의 생존을 확인한 소방대원들은 침수된 집 안으로 들어가 흙과 쓰러진 가구 등을 파헤쳤다.

지난 9일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경기도 양평군의 한 가정집을 덮쳤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토사를 헤치며 사람을 구조하고 있다. 양평소방서

지난 9일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경기도 양평군의 한 가정집을 덮쳤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토사를 헤치며 사람을 구조하고 있다. 양평소방서

5분 정도 흘렀을까. 흙더미 속에서 B씨가 발견됐다. 그는 집이 붕괴하면서 가재도구와 토사에 깔려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B씨를 구출한 소방대원들은 들 것에 B씨를 눕히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다시 안전로프에 몸을 의지해 개천을 건너고 질퍽거리는 야산을 넘어야 했다.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다친 B씨의 상태를 고려해 심하게 움직이면 안 됐다. 소방대원들은 교대로 B씨를 옮겼다.
구조 작전은 5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B씨는 진입로에 대기하던 구급차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들은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길이 사라진 탓에 이동 시간이 지체돼 걱정을 많이 했다”며“강행군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B씨를 무사히 구조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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