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홍' 일베 용어에 무너졌다…정치판 '화랑 관창' 청년대변인

중앙일보

입력 2022.08.14 05:00

업데이트 2022.08.14 13:28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페이스북 캡처]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페이스북 캡처]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혐오 발언들이 또다시 정치권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0일 ‘이준석 키즈’로 불리는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대통령실 홍보수석실 산하 청년대변인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온라인에선 순식간에 그가 과거 ‘네다홍·씹운지·개독’ 같은 일베 혐오 표현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부실 검증 공세로 번졌다.

‘네다홍(네, 다음 홍어)은 호남 출신을, ‘씹운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을, ‘개독’은 기독교를 비하하는 경멸적 언어다. 이에 대해 박 대변인은 “어릴 때부터 계정을 가족끼리 공유해왔다. 두 살 터울 동생이 (내 아이디로) 몇몇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얘기를 듣고 삭제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11일 “개인에 관한 문제는 설명을 더 들어보겠다”며 일단 판단을 보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인사 검증 실패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김남국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1월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 콘서트에서 저자인 박민영 당시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이준석 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2022.1.28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월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 콘서트에서 저자인 박민영 당시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이준석 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2022.1.28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은 “청년대변인은 상징적 의미일 뿐, 5급 행정관직을 제안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권 안팎의 청년들 사이에서는 박 대변인 발탁을 곱지 않게 보는 기류가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보좌진은 “윤 대통령을 위해 대선 기간 헌신한 청년들이 수두룩한데, 하필이면 이 대표 뒤에서 그야말로 ‘내부총질’에 앞장섰던 박 대변인을 용산에 데려가느냐는 말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부러 이준석 주변을 ‘갈라치기’해 이 대표 힘을 빼려는 것 아니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대통령의 청년 참모 기용은 전 정부에서도 크고 작은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1급으로 발탁됐던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을 두고 “일반적인 청년들은 몇 년을 준비해 행정고시를 패스해 5급을 달고 근 30년을 근무해도 2급이 될까 말까 한 경우가 허다하다”(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며 공정성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다.

박 전 비서관은 2019년 8월 민주당 청년대변인 공개 오디션 출신이다. ‘2022 나는 국대다 시즌2’ 1위 출신인 박민영 대변인과 중앙정치 입문 경로가 비슷하다. 당시 박 전 비서관이 오디션 우승 3년 만에 최연소 청와대 여성 비서관에 오른 걸 두고 2030 남성들 사이에서는 역차별 시비도 일었다. 그러자 청와대가 “짧게 하면 한 달, 아무리 길게 해봤자 문재인 대통령 임기 때까지밖에 안 하는 것”(이철희 정무수석)이라는 식으로 논란을 진화했다.

1996년생인 박성민 전 비서관은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을 통한 공개 오디션을 거쳐 청년대변인으로 임명된 뒤 이낙연 대표 시절 최고위원으로 발탁됐다. 사진은 박성민 청년대변인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1996년생인 박성민 전 비서관은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을 통한 공개 오디션을 거쳐 청년대변인으로 임명된 뒤 이낙연 대표 시절 최고위원으로 발탁됐다. 사진은 박성민 청년대변인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2019년에는 문재인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실에 발탁됐던 여선웅 전 청년소통정책관이 기용된 지 불과 7개월 만에 총선에 출마, 직을 그만둬 뒷말을 빚었다. 정치권에서는 ‘청년 정치인들이 실제 역량보다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구조적 문제가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권에서 청년은 자체의 세력이 되기보다는 ‘치어리더’식의 상징적 역할과 일신의 희생을 요구받는 ‘화랑 관창’ 지위에 머물고 있다”며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에 홀로 맞서 싸워 신라군의 승기를 돋운 16세 소년 관창과 비슷한 입지”라고 말했다. 관창은 백제군의 포로로 붙잡혀 처음에는 풀려났지만, 두 번째에 결국 목이 베여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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