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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현장 눈에 띈 '尹의 구두'…대통령실 수준 딱 이 정도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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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고, 오른쪽의 오세훈 서울시장은 등산화로 보이는 운동화를 신었다. 이곳에서는 발달장애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 딸, 이들을 부양하던 40대 여성이 불어난 물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고, 오른쪽의 오세훈 서울시장은 등산화로 보이는 운동화를 신었다. 이곳에서는 발달장애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 딸, 이들을 부양하던 40대 여성이 불어난 물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1일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런저런 뉴스를 살펴보다 눈에 띄는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이날 오후 서울 관악구의 수해 현장을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현장을 안내한 공무원이 운동화를 신은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지난 9일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참사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뭘 신었을까. 역시나였다. 쭈그려 앉아 반지하 창문을 통해 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윤 대통령의 신발은 검은색 정장 구두였다. 참 의아했다. 역대 대통령과 달라서였다. 다들 최소한 운동화는 신고 현장을 찾았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장화까지 신었고, 유일한 여성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단화 차림이었다.

굳이 과거 대통령들까지 소환해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윤 대통령과 함께 현장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신발은 등산화였다. 형광색 끈이 달려 있어 눈에 쏙 들어왔다. 윤 대통령보다 하루 뒤인 10일 서울 상도동 반지하 주택을 찾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회색 운동화를 신었다.

2011년 7월 29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경안천이 범람해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해 현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는 당시 장화를 신고 현장을 다녔다. 중앙포토

2011년 7월 29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경안천이 범람해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해 현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는 당시 장화를 신고 현장을 다녔다. 중앙포토

단순히 왜 운동화를 안 신었냐고 따지려는 게 아니다. 신발 하나만 봐도 지금 대통령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뻔히 보여서다. 새벽 3시까지 서초동 자택에서 수해 대응을 지휘하고,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집중 호우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뒤 신림동 현장으로 향한 윤 대통령의 마음은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발달장애 언니까지 부양하던 40대 여성이 반지하에 차오른 물에 잠겨 고통 속에 함께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그 누가 가벼운 마음으로 현장을 찾을 수 있을까.

처참한 심정으로 현장으로 달려갔을 윤 대통령 대신 대통령실의 그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으시라”고 대통령에게 말해줬어야 했다. 지금 대통령실엔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는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용기 있는 사람이 없는지, 결과는 이미 설명한 대로다. 윤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 중엔 “참 소탈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가 단 한마디만 해줬다면 윤 대통령은 버선발로, 맨발로라도 피해 주민들과 함께 했을 텐데, 현실은 달랐다.

평생을 검찰에서 일한 윤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에 비해 현장을 대하는 감각이 둔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형식보다 진심을 중요시하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정치 초년생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하는데, 그들의 밑천이 신발 하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택 지휘와 카드뉴스 논란을 키운 대통령실의 실력이 이런 장면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재난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 이상민 장관 역시 구두를 신었으니 내각의 감각도 대통령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국민의힘 주호영(왼쪽)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새마을 모자를 쓰고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왼쪽)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새마을 모자를 쓰고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여당은 한 술 더 떴다. 11일 사당동 수해 현장을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행태는 참으로 기이했다. 봉사 무대를 막장극으로 만든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김성원 의원)란 발언은 너무도 처참해 더 보탤 말도 없다. 여당의 투톱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내표가 눌러 쓴 초록색 새마을 모자는 김 의원의 발언으로 완전히 빛이 바랬다.

새마을운동은 어떻게 시작됐나. 1969년 여름 수해 현장으로 향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북 청도군 신도리를 지나다 제방 복구 작업을 하던 주민들을 발견하고 특별열차를 멈춰 세웠다. 곧장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진흙과 땀방울에 뒤범벅이 되면서도 서로 힘을 합해 마을을 복구하던 주민들을 격려했다. 이듬해 4월 박 전 대통령은 “전국 마을이 신도리 마을처럼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훗날 신도리는 새마을운동의 발원지가 됐다. 새마을운동을 둘러싸고 ‘관제다, 아니다’ 논란이 있지만 그 해 여름 기차를 멈추고 신도리 주민에게 다가갔던 박 전 대통령의 마음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국민의힘 투톱의 새마을 모자를 보면서 진정성을 느꼈다는 이가 몇이나 될까. 새마을 모자의 역사적 내력과 그 속에 담긴 진심의 무게, 그리고 김성원 의원의 헛발질이 극단적인 대비효과를 낳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음이 중요하지, 구두와 신발, 또 말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지만 정치의 기본은 공감이고, 공감은 형식으로 표출된다. 장례식과 결혼식의 옷차림을 달리하는 건 공감을 위한 기본이다. 그런 최소한의 공감 능력 없이 정치는 불가능하다. 당장의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 먼저 최소한의 공감 능력과 진정성부터 키울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과 내각, 여당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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