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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지원? 당장 오늘밤 몸 누일 곳 없다" 이재민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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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모텔에서, 이튿날은 지인 집에서 잤어요. 오늘은 또 다른 친구네서 자야 하나 고민이 돼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사는 차종관(27)씨는 5일째 잘 곳을 찾아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다. 지난 8일 전세 5000만원짜리 집은 완전히 잠겼지만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숙박비를 지원해줄 테니 집이 좀 정리될 때까지 밖에서 지내라”던 임대인은 이내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입장을 바꿨다. 공사 기간 1~2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에 약속대로면 부담할 금액이 수백만원이 훌쩍 넘을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차종관(27)씨의 집은 지난 8일 물난리를 겪은 후 복구 중에 있다. 차씨는 지인들의 집에 번갈아 가며 묵고 있다. 사진 차종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차종관(27)씨의 집은 지난 8일 물난리를 겪은 후 복구 중에 있다. 차씨는 지인들의 집에 번갈아 가며 묵고 있다. 사진 차종관

임대주택, 전국 1492명 이재민 수용할 수 있을까

 정부는 11일 차씨와 같은 수해 이재민에게 비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가 수해관련긴급주거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이재민들에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하고 있는 매입임대주택과 건설임대주택 중 빈집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빈 임대주택이 이재민의 주거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지가 문제다. 아파트인 건설임대주택은 대부분 예비 입주자들을 미리 뽑아서 대기자로 두기 때문에 실제 이재민에 제공될 긴급주거는 다가구주택 형태인 경우가 많은 매입임대주택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지역에는 2021년 말 기준으로 LH가 보유한 매입임대주택 빈집은 총 368가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중부 집중 호우로 발생한 서울 시내 이재민은 12일 오전 11시까지 총 614세대 894명이다. 국토부는 우선 LH 보유 임대주택을 우선 활용하되 물량이 부족하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이 보유한 빈집도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차종관(27)씨의 집은 지난 8일 저녁 폭우로 천장을 10cm 남기고 물이 가득 들어찼다. 현재 도배와 옵션을 모두 갈아내는 대공사 중인데 1~2개월이 걸릴 걸로 보고 있다. 사진 차종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차종관(27)씨의 집은 지난 8일 저녁 폭우로 천장을 10cm 남기고 물이 가득 들어찼다. 현재 도배와 옵션을 모두 갈아내는 대공사 중인데 1~2개월이 걸릴 걸로 보고 있다. 사진 차종관

 언제부터 지원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음 주 정도까지는 정책을 안내하고 수요를 파악하는 단계다. 이후 이사할 집도 봐야 하고 여러 절차들이 있어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접수를 받은 후 기존 거주지 인근의 공공임대주택 목록을 만들고 몇 군데 방문해서 보여드리는 등의 절차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 신청 희망 여부는 ‘자연재난 피해신고서’의 문항을 통해 조사해 관할 기초지방자치단체가 1차 취합한다. 이 신고서는 자연재난 피해가 발생하면 10일 이내에 접수해야 한다. 이재민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임시 주거지를 찾는 데는 2~3주 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친구 집·동생 집·옥탑방으로 각자도생

9일 동작구청 관계자들이 문창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주거시설을 찾는 침수피해 주민들이 늘자 매트를 추가로 꺼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동작구청 관계자들이 문창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주거시설을 찾는 침수피해 주민들이 늘자 매트를 추가로 꺼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민들은 친인척과 지인의 집, 인근 옥탑방 등 몸 누일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흙탕물에 젖은 이불을 밟아 빨던 신림동 주민 최모(53) 씨는 “우선 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동생네 집에 잠시 머물고 있다. 공사가 1~2개월은 걸릴 것 같은데 조카들과 함께 지내야 하니 사실은 불편하다”며 “임시 주거시설이 지원받을 수 있다는 안내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대방동 주민 A씨는 “물에 잠기는 게 트라우마가 돼 다시는 반지하에 살기 싫다”며 “이참에 옥탑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인 집이 아니라면 공공임대주택이 지원될 때까지 이재민들이 택할 수 있는 건 임시 대피 시설이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현황'에 따르면, 총 1153개소 중 씻고 잘 수 있는 연수·숙박 시설은 43개소(3.7%)였고 학교가 627개(54.3%)로 가장 많았다. 관악구의 경우 당곡중학교 체육관, 미성중학교 체육관, 은천경로당, 국사봉경로당, 원신경로당과 각 동 주민센터에 임시주거시설이 운영 중이다. 차종관씨는 “주민센터와 학교에 직접 가 봤더니 샤워시설도 없고 매트 한 장, 이불 한 장뿐인 걸 보고 대피시설행은 포기했다”며 “포항 지진 땐 체육관에 텐트는 쳐 줬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수해로 입은 재산 손실에 대한 지원은 시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당장 잘 곳을 잃은 세입자들에 대한 주거 지원은 즉각적이야 한다”며 “공공임대주택 매칭 때까지라도 현실적인 임시 거처를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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