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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주인 반씩, 재난지원금 배분 혼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1호 12면

지난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동주민센터에서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피해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동주민센터에서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피해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겨우 이돈 주면서 집주인과 나누라구요?”

12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사동 주민센터. 지난 8일 쏟아진 폭우로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다는 이연화(64·여)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집주인과 (재난지원금을) 반반 나눠야한다”는 주민센터 공무원의 설명을 들은 직후였다. 차상위계층이라는 이씨는 “도배·장판 비용 등도 다 내돈으로 내는데 왜 이돈 절반을 주인에게 줘야하느냐”고 말했다.

재해 현장에서 재난지원금 배분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주택 침수 피해 등을 본 이재민에게 실거주 세대당 200만원을 우선 지원하고 있다. 주민센터 창구마다 5~6명씩 줄을 섰고 신청서를 쓰는 작성대도 붐볐다. 공무원들은 이재민이 올때마다 “집주인과 반반씩 나누라”는 안내를 반복했다. 재난지원금 명목이 집 수리 비용이기 때문이다. 집 주인도 지원금을 받은 세입자가 갑자기 이사하면 손해다. 세입자가 지원금을 나누지 않으면 받아둔 보증금에서 그 금액만큼을 빼겠다고 통보하는 집주인도 많다는 게 세입자들의 전언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원칙은 실거주자(세입자)가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지만 둘 사이 다툼이 굉장히 많다”며 “규정이 확실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세입자 동의만 있으면 둘이 알아서 나누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취약계층 등에 대한 세심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 표준 시세일 정도로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인데 지원금마저 반으로 나누면 당장 생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지원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충분히 안내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재민 김모(67)씨는 “이런 절차가 있는 줄도 몰랐고 주변에서 알려주길래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50대 윤모씨도 “노년층도 많은 동네인데 재난 문자처럼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이 언제 지급될지도 미지수다. 접수, 피해 현장 확인, 피해금액 결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민들이 몸을 누일 곳도 마땅치 않다. 신림동에 사는 차종관(27)씨는 5일째 잠잘 곳을 찾아 친구 집을 전전하고 있다. 차씨는 “포항 지진 때는 최소한 체육관에 텐트는 쳐 줬던 것 같은데, 주민센터에 물어보니 임시주거시설에 샤워시설도 없고 매트 한 장, 담요 한 장밖에 줄 수 없다고 하길래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임시주거시설 1229개소 중 씻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44개소(3.6%)에 불과하다. 정부는 11일 차씨와 같은 수해 이재민에게 비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인 건설임대주택은 입주자가 이미 대기하고 있어 실제 이재민에 제공할 긴급주거는 매입임대주택 뿐이다. 이번 호우로 894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서울 지역의 빈 매입임대주택은 368가구다. 그나마 새 주거지로 입주하기까지 2~3주 이상 걸릴 전망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수해로 삶의 공간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임시 거처를 포함한 지원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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