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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공공임대는 혐오시설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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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서울에만 20만 가구, 서울 전체 주택의 5%를 차지하는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이 사라진다. 8~9일 서울·수도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반지하 주택 거주자의 인명피해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반지하를 주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축 주택은 물론 이미 지어진 20만 가구는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주거용 사용이 금지된다.

서울시가 반지하의 주택 사용 금지 방안을 내놓은 건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반지하 주택은 태생적으로 폭우의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거리를 따라 흐르던 물이 계단을 통해 반지하 주택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침수를 막기 어렵다. 저지대의 반지하 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지대도 마찬가지다.

반지하 비극 끊어 내려면
공공임대 확충 서둘러야

폭우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한 만큼 반지하 주택은 서서히 없애는 게 맞다. 문제는 경제적 여건상 반지하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 취약층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반지하 주택 임차가구의 평균소득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가구(351만원)의 절반에 그친다.

저소득층, 비정규직 비율도 각각 74.7%, 52.9%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원룸에 살면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자녀가 있는 가구라면 최소한 방이 2~3개인 집이 필요한데, 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반지하가 대안인 셈이다. 경제적인 이유 말고도 반지하 주택을 선택하는 이유는 또 있다.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대개 도심 한복판에 있어 교통 등 다른 조건이 좋은 예가 많다. 몸이 불편해 장거리 출퇴근이나 등학교가 불가하다면 더더욱 반지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반지하 주택을 퇴출하면 이들은 어디에 살아야 할까.

해법은 공공임대 확대뿐이다. 공공임대 확충 없이 단순히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건 주거 취약층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임대를 짓거나 기존 주택을 사들여 값싸게 임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현재 서울의 공공임대는 24만 가구 정도로 전체 주택의 약 8% 수준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에도 못 미치고, 공공임대 ‘선진국’인 네덜란드(40%), 영국(22%), 스웨덴(20%), 독일(20%)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역대 정부마다 공공임대 확대를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는데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세금이 적잖이 들어가는 데다, 공공임대를 지을 땅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공공임대 대상이 주거 취약층은 물론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된 영향도 있다.

그런데 정부 탓만 할 건 아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공공임대를 혐오시설 취급하며 ‘무조건 반대’하는 사회적 풍토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주민 반대로 공공임대 건설이 무산된 곳이 어디 한 둘 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3년 소셜믹스(Social Mix) 개념을 도입했다. 도심에서는 고가의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한 아파트 단지에 섞어 지었고, 신도시에서는 초·중·고교를 중심으로 분양·공공임대 아파트를 혼합해 건설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했나. 공공임대를 아파트 한 개 동으로 몰아 사실상 분리했고, 공공임대 아파트에 살면 엘거·휴거(공공임대 주공급자인 LH 아파트에 사는 거지)라고 부르며 차별했다. 이 때문에 공공임대에 입주할 순번이 됐는데도 입주를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8~9일 연거푸 터진 반지하 주택의 비극을 막으려면,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거 취약층을 위한 공공임대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서울시나 정부의 역할은 물론 우리의 역할도 필요하다. 공공임대를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 공공임대는 혐오시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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