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기생충과 우영우의 속삭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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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31면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기우: “아버지, 앞으로 계획이 뭐에요?”

기택: “아들아,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으면 계획을 달성했느니 안 했느니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계획에 없는 돌발적인 사태가 생길 이유도 없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살던 송강호와 최우식 부자가 수해를 당하고 이재민 대피소에서 나눈 대사다. 115년 만의 폭우와 침수사태에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기초수급자 발달장애인 가족이 빗물에 갇혀 숨진 비극 앞에서, 예술이 곧 현실이자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란 걸 새삼 깨닫는 한 주였다.

역대급 폭우 이슈에 파묻혔지만 사실 이번 주 예고됐던 핫이슈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사퇴였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임명 24일 만에 느닷없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개편안을 들고 나와 민심 ‘떡락’을 자초한 것이다. 장관을 빛의 속도로 퇴진시킨 이 조기입학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에피소드를 방송한 이틀 후 발표됐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 CJ ENM]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 CJ ENM]

어린이를 웃게 하려 이름까지 개명한 ‘방구뽕’씨(구교환)는 학교와 학원에 갇힌 어린이들의 해방을 주장하며 셔틀버스를 납치(?)해 놀러갔다가 부모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아동학대급 ‘자물쇠반’을 운영하는 보습학원 원장이 마케팅 도구로 삼아 온 ‘서울대 나온 아들’의 일탈이었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는 방구뽕의 선동과 “맨날맨날 놀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라는 아이들의 응답에 부모라면 가슴 짠했을 터다.

교육부 정책 입안자들 중에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걸까. 온갖 깨알 같은 이슈로 연일 미디어를 도배 중인 ‘우영우’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보고도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며 웃어넘겼던 것 아닐까. “어린이들은 이해하고 있어요. 방구뽕씨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른들 뿐입니다”라는 박은빈의 대사처럼, 교육부 ‘어른’들은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뮤지컬 ‘시카고’를 만든 최고의 연출가 밥 포시는 “표면의 주제를 즐기고 난 뒤 그 다음 날 뭔가 찜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최고 작품”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야기의 층이 여러 겹이어서 자꾸 소환되고 생각하게 만드는 콘텐트가 좋은 콘텐트라는 얘긴데, ‘기생충’ ‘우영우’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문화 콘텐트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어른’은 참 없다. 문화예술은 언제나 뒷방 신세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예술행위가 배부른 사치라며 금기시됐고,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예술가들은 각종 지원대책에서도 뒷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늘 앞서가는 것도 예술가들이다. 영화 ‘컨테이젼’(2011)이 야생동물을 매개로 한 팬데믹을 정확히 예측했었고, 대지진과 쓰나미를 예견한 1960년대 소설 ‘일본침몰’은 영화로,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경고를 던지고 있다.

위의 ‘기생충’의 대사가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그렇게 단순할까. 기택의 가족이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침수 현장에서 “폭우 예보에도 배수시설을 정비하지 않은 탓”이라는 한 시민의 일갈에 문득 우리 정부에게 폭우에 대비한 ‘계획’이 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강남역 수퍼맨’이 맨손으로 쓰레기를 걷어 내야 했던 우수관 관리 상태가 말해 주듯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건 아닐까. ‘반지하’ 상태를 벗어나 세상을 구하는 건, 문화예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어른’들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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