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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차별” 전철·화장실 등 24시간 불편한 왼손잡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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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02면

오늘 세계 왼손잡이의 날, 그들이 겪는 고충

자신을 왼손잡이라고 밝힌 한국인은 5%이지만, 글쓰기까지 왼손으로 하는 이는 1%에 그친다. 왼손잡이는 손에 잉크가 덜 묻고 편하기 때문에 왼팔을 크게 틀어서 글씨를 쓴다. 왼손잡이 유명인도 많다. 정준희 기자

자신을 왼손잡이라고 밝힌 한국인은 5%이지만, 글쓰기까지 왼손으로 하는 이는 1%에 그친다. 왼손잡이는 손에 잉크가 덜 묻고 편하기 때문에 왼팔을 크게 틀어서 글씨를 쓴다. 왼손잡이 유명인도 많다. 정준희 기자

출장지의 한 숙소. 화장지 롤러를 향해 왼손을 뻗어야 했다. 그것도 백핸드로. 비스듬히 뒤편에 있는 것보다 왼쪽에 있는 게 불편했다. 오른손잡이인 기자로서는 말이다. 대부분의 화장지 롤러는 오른쪽에 있다. 그렇다면, ‘오른편 일색’인 사회에서 평소 왼손잡이들의 불편은 어느 정도일까. 한 왼손잡이는 “24시간 불편하다”고 말했다. 왼손잡이들은 불편을 인내로 버티고 있을까. 아니면 교정되거나 스스로 교정을 하고 있을까.

오늘,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왼손잡이 여러 명과 함께, 불편과 고충으로 뒤범벅된 ‘왼손잡이의 하루’를 구성했다.

“왼손잡이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불편합니다.” 중앙SUNDAY 오유진 기자는 왼손잡이다. 오 기자의 말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선 긋는 것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라는 것. 그는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도 은밀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왼고개 젓다’‘짝배’ 등 부정·놀림 받아  

한국갤럽이 2013년 만 19세 이상 남녀 12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가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응답했다. 2002년 조사에서는 4%였다. 정화식 동신대 직업치료학과 교수는 2009년에 우리나라 왼손잡이 비율이 5.8%라는 연구 결과를 낸 바 있다. 세계 왼손잡이 비율은 10~12%로 추정된다. 한국의 왼손잡이 비율은 세계의 절반 수준인 셈. 정 교수는 “조사 대상 연령층(젊을수록 자신을 왼손잡이라고 밝히는 비율이 높다), 왼손잡이에 대한 결정 방법(양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보는 국가도 있다) 등이 달라 우리나라가 딱히 선천적인 왼손잡이 비율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사회적 적응과 부모 등의 강요로 인해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나 양손잡이로 전향한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글쓰기(1%), 수저질(4%, 이상 한국갤럽) 때 왼손 사용자는 더욱 줄어든다. 오 기자는 이 모두를 왼손으로 한다. ‘완전 왼손잡이’다.

오전 8시. 대학생 유한음(20·서울 동대문구)씨가 방학 중 동아리 활동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는 “무의식중 왼손으로 오른쪽에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가 스텝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박희철(57·서울 서초구)씨의 출근길. 그는 몸을 비틀어 왼쪽 손에 든 카드를 지하철 2호선 시청역 개찰구 단말기에 찍었다. 지하철 개찰구는 대부분 오른쪽에 있다. 그러고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게걸음처럼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한데, 박씨는 오전 10시 회의에서 오른손으로 메모했다. 박씨는 “일상의 99%는 왼손을 쓰지만, 글쓰기는 오른손으로 교정해서 쓴다”고 밝혔다. 왼손으로 글을 쓰면 자신이 쓴 글이 안 보이고 펜이 지나간 자리를 왼손으로 비비기 때문이다.

지하철 개찰구 단말기는 대부분 오른쪽에 있다. 왼손잡이로서는 일상의 불편이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개찰구에 한 시민이 왼손으로 카드를 찍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하철 개찰구 단말기는 대부분 오른쪽에 있다. 왼손잡이로서는 일상의 불편이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개찰구에 한 시민이 왼손으로 카드를 찍고 있다. 김홍준 기자

남자 테니스 메이저대회 22회 우승을 한 라파엘 나달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테니스를 한다. 오른손을 받혀서 치는 백핸드 강력하다. [AP=연합뉴스]

남자 테니스 메이저대회 22회 우승을 한 라파엘 나달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테니스를 한다. 오른손을 받혀서 치는 백핸드 강력하다. [AP=연합뉴스]

세계 왼손잡이의 날은 영국왼손잡이협회가 1992년 만들었다. 왼손잡이 비율이 10% 정도인 이웃 일본에도 왼손잡이의 날이 있다. 2월 10일이다. 숫자만 딴 ‘0210’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레(0)·후(2)·토(10)’로, ‘왼쪽’을 의미하는 ‘레프트(Left)’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런 일본에서 출시 4년 만에 600만 개 넘게 팔린 왼손잡이 용품이 있다. 문구 브랜드 지브라의 ‘사라사드라이(SARASA dry)’ 볼펜이다. 볼펜 용액에 빨리 마르는 성분을 섞어 왼손잡이가 글씨를 쓸 때 손에 잉크가 묻어나거나 종이에 번지지 않도록 했다. 왼손잡이의 불편을 상업으로 연결한 대표적인 예다.

오후 1시. 대학생 박진홍(20·부산 사상구)씨가 친구들과 분식집에 갔다. 그는 테이블 왼쪽 구석에 앉았다. 오른손잡이인 친구들과 팔이 계속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라고 계속 말씀하시고, 가족들도 오른손을 쓰라고 해서 지금은 ‘대부분 교정돼’ 식사만 왼손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가 선생님으로부터 글 쓰는 손을 바꾸라는 말은 들은 때의  100여 년 전, 20세기 초반에 호주는 세계 처음으로 학교에서 왼손잡이의 왼손 글쓰기를 허용했다. 미국은 1920년쯤, 유럽은 50~60년대에 뒤따랐다.

사우스 포(southpaw)는 왼손을 쓰는 복서나 야구 선수를 가리킨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는 사우스 포다. 파퀴아오가 플로이드 메이웨더를 상대로 왼손 스트레이트를 구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스 포(southpaw)는 왼손을 쓰는 복서나 야구 선수를 가리킨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는 사우스 포다. 파퀴아오가 플로이드 메이웨더를 상대로 왼손 스트레이트를 구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후 6시. 박봉수(45·경기도 성남시)씨가 퇴근 뒤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박씨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그는 “3층으로 된 골프 연습장 타석이 100개 정도인데, 왼손잡이용 타석은 한 개 층에 하나씩, 3개뿐”이라며 “그것도 왼쪽 끝에만 나 있어 계속 ‘훅’을 치게 되더라”고 밝혔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박씨가 처음 골프를 시작한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골프채·골프장갑도 왼손잡이용이 드물었다. 당시 그의 선택은 ‘교정’이었다. 1년 가까이 ‘오른손잡이 골프’를 다시 배웠다. 그러다가 왼손 골프채를 어렵게 구하고는 왼손으로 복귀했다. 야구선수 생활 때는 어땠을까. 그는 “왼손잡이는 투수·외야수 아니면 1루수를 할 수밖에 없어 (2루수·3루수·유격수·포수도 할 수 있는) 오른손잡이보다 포지션 경쟁이 더 치열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팀 내에서 ‘국민타자’ 이승엽 등과 경쟁했다.

20대 8%, 30~40대 6% 젊을수록 많아

영국의 전설적 그룹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왼손잡이다. 왼손잡이용 기타는 오른손잡이용에 비해 20% 가량 비싸다.. [중앙포토]

영국의 전설적 그룹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왼손잡이다. 왼손잡이용 기타는 오른손잡이용에 비해 20% 가량 비싸다.. [중앙포토]

현재 프로야구 타율 1위인 이정후(24·키움)는 우투좌타다. 아버지 이종범(52) LG 2군 감독이 우투좌타로 키웠다. 이 감독은 원래 왼손잡이였다. 그는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 왼손잡이용 글러브조차 제대로 없었고 오른손으로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며 “우투좌타가 되지 못한 게 조금 후회된다”고 밝혔다. 박찬민(48) 전 SBS 아나운서는 딸 민형이가 왼손잡이인 줄 모르고 오른손으로 테니스를 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엄마, 아빠가 오른손을 쓰니까 아이가 왼손잡이일 줄 전혀 몰랐다”며 “애가 왼쪽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왜 못 하지’라는 생각만 했다”고 회상했다.

헐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왼손잡이다. 영화 '솔트(2010)'에서 왼손에 총을 쥐고 연기하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헐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왼손잡이다. 영화 '솔트(2010)'에서 왼손에 총을 쥐고 연기하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라파엘 나달(테니스), 마빈 헤글러(복싱), 디에고 마라도나(축구)처럼 왼손잡이가 스포츠에서 오른손잡이보다 스포츠에 능할까. 한 연구(기야르&아제마르)에 따르면, 왼손잡이가 1000분의 몇 초 반응이 더 빠르다고 하지만 완전한 설명은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왼손잡이가 각 종목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뿐, 스포츠를 더 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정후가 좌타를 선택한 건 1루 쪽이 두 걸음 정도 가깝고, 타격 후 스타트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는 타고나는 걸까. 정용 교수는 “우뇌가 발달하면 왼손잡이, 좌뇌가 발달하면 오른손잡이가 된다는 게 통설”이라며 “절대적이진 않지만, 유전의 영향도 받는다”고 밝혔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는 오바마처럼 왼팔을 크게 비틀어 글씨를 쓰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통령 중 왼손잡이는 오바마 외에도 빌 클린턴, 조지 G.W 부시, 제럴드 포드, 해리 트루먼 등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양손잡이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는 오바마처럼 왼팔을 크게 비틀어 글씨를 쓰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통령 중 왼손잡이는 오바마 외에도 빌 클린턴, 조지 G.W 부시, 제럴드 포드, 해리 트루먼 등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양손잡이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왼쪽은 예전 악과 부정으로 묘사됐다. 성경에서 이브는 선악과를 ‘왼손’으로 따서 아담의 ‘왼손’에 건네준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식탁에서 왼손을 사용하면 몰상식하다고 여겨졌다. 영어 라이트(right), 프랑스어 드르와(droit)는 ‘오른쪽’과 ‘옳음’을 동시에 뜻한다. 반면 왼쪽을 뜻하는 레프트(left)는 ‘버려진’, 고슈(gauche)는 ‘서툴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우리말 중 ‘왼고개를 젓다’는 반대나 부정을 뜻한다. ‘왼고개를 틀다’는 외면함을 의미한다. ‘왼소리’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나 험한 소리를 말한다. 왼손잡이를 ‘짝배’라며 놀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결혼 후 아내가 왼손잡이임을 알게 되면 이혼 사유가 됐다. 왼손잡이용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위·커터·자 등을 사용할 때는 물론 군대에서 총을 쏠 때도 왼손잡이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많은 도구가 오른손잡이에 맞춰지다 보니, 한국전력은 2019년까지도 전기·전자 부문 직원 채용 때는 오른손잡이로 제한하기도 했다.

한 대학 강의실에 놓인 의자. 오른쪽에 선반이 나있어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중앙 포토]

한 대학 강의실에 놓인 의자. 오른쪽에 선반이 나있어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중앙 포토]

오후 7시. 저녁 식사 중인 석정근(38·경기도 고양시)씨는 “평소 왼손으로 밥을 먹지만, 어릴 때부터 왼손을 쓰는 게 못마땅하셨던 친척분들 앞에서는 오른손을 쓰려고 따로 연습했다”며 “이번 추석 모임 때도 오른손을 써야 할 것”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2013년 한국갤럽 조사 이후 우리나라 왼손잡이 비율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 조사에서 20대 8%, 30·40대 6% 등 젊은 층일수록 왼손잡이 비율이 높았음을 고려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왼손잡이 비율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대 초반이든, 50대 후반이든 왼손잡이 취재원들은 교정을 강요받았거나, 일상이 불편해 스스로 교정을 해왔다. 심리적, 물리적 불편함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과거보다는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졌지만,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며 “우리 모두가 ‘다름’을 ‘다름’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하는 시선을 던지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오후 8시 오유진 기자가 취재원을 만났다. 그 취재원이 말했다. “왼손잡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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