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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윤 대통령과 국민의 ‘가상’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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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역대급 물난리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조금 더 빠질 수도 있다. 지난 3월 필자가 이 지면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지지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현대의 대통령들이 통치를 끌어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지지율이다. 이것이 충분하면 대통령은 선출된 제왕이 되기도 하고 부족하면 레임덕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

임기 초반부터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당황하고 있지만, 결국 해법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지지율 만회를 위해 대통령들이 취하는 전략은 보통 민심의 현장으로 직접 뛰는 것인데(going to the public) 아직 대통령실에서 체계적인 움직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두 정치 주역의 솔직한 대화 필요
민심은 대통령의 조정능력에 의문
경직된 법치주의, 인사난맥의 문제
직접 대화 통해 새 계기를 찾아야

이에 필자는 오늘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가상 토론회를 열어보려 한다. 화가 난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을까? 윤 대통령은 성난 민심에 대해 어떤 자기 변호를 할 수 있을까?

두 주제에 집중해보자. 첫째 대통령의 리더십 실종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 그리고 윤 대통령의 답변으로서의 탈제왕적 대통령 프로젝트. 둘째, 인사 문제를 통해 드러나는 윤 대통령의 경직된 법치주의와 그에 대한 민심의 실망.

1. 민심 : “청와대 이전 자체는 괜찮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공간 이전과는 별개로 대통령실이 내각, 여당, 대통령실의 역할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여당의 자중지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지층마저 이탈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또한 내각은 5세 취학 학제 개편의 섣부른 추진에서 보듯이 어설픈 정책으로 시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낳고 있다. 결국 최종 조율자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중도층마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 “그 문제에 대해 저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많은 시민들께서 아시다시피 우리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입니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실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정부의 세세한 일에 개입하면서 효율성과 책임성, 헌법정신 등이 훼손되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청와대 직원들의 무책임한 전횡이 극에 달하였었다는 것을 국민들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국민과 동떨어져 있는 청와대를 이전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탈피를 추진해왔습니다. 대통령실 인원을 자발적으로 크게 줄인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실의 개입 여지를 줄일 뿐만 아니라 내각의 장관님들에게 정책 자율성을 폭넓게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법무부의 새로운 이민 정책의 추진 검토 등 내각에서 자율적으로 잘 해내는 일들도 있지 않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의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정책 혼선도 탈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혼선이라는 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심 : “제왕적 대통령실의 탈피라는 명분에는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의 로드맵을 상세히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새로운 관계도 떳떳이 밝혀야 한다.”

2. 민심 : “교육부총리 사퇴에서 보듯이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갖는 기대가 무너진 큰 원인이 인사 난맥이다. 단지 검찰 출신 인사들이 많다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의외의 인물들이 덜컥 기용되는 차원을 넘어선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를 내세웠던 윤 대통령이 인사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채 몇몇 장관들을 임명하는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이런 사례들이 형식적으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법과 절차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다고 느끼고 있다. 100일 여를 겪어보니 윤 대통령의 법치주의는 한 마디로 딱딱하고 경직된 고체(固體) 법치주의에 머물러 있다. 법과 절차의 형식 요건만 갖추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를 국민들은 깊이 우려한다. 그래도 법과 절차 자체가 엉망으로 망가졌던 전임 정부에 비해서는 지금이 낫지 않느냐는 윤 대통령의 무심한 발언에 국민들은 절망감마저 갖게 된다.”

윤 대통령 : “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국민께 큰 걱정을 끼친 점에 사과를 드립니다. 100일을 지내보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자칫하면 고립되기 쉬운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저 스스로가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점도 절실히 느낍니다.

저를 한번 더 믿어주십시오. 제가 검사 신분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바라는 대통령 후보로 변신하였을 때 국민들께서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이제부터 경직된 법치주의를 넘어 유연한 법치주의로,그리고 널리 민심을 들어 전문성, 공감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겠습니다.”

민심 : “가상으로나마 대화를 나눈 것에 의미를 둔다. 앞으로 직접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가 넓어지길 기대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