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되살아나는 사드 악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경제에디터

최지영 경제에디터

중국 외교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과거) 대외적으로 3불(不)·1한(限) 정책을 선서했다”고 10일 주장하고 나섰다. ‘1한’이란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에 제한을 둔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시작된 사드 정상화 조치의 중단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사드 배치와 운용은 주권과 관련된 문제여서 절대 중국 정부의 요구에 밀릴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 정부도 10일에 이어 11일 사드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에 ‘사드’ 단어는 언급 자체만으로 악몽이자 공포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과 영향력이 확 줄어든 결정적 계기가 사드 국내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었기 때문이다.

사드 또 들고 나오는 중국 정부
5년 전 곤욕 치른 기업들 비상
탈중국 원하지만 당장 힘들어
중국이 손 못댈 제품 만들어야

2017년 3월 중국 저장시 롯데마트가 중국 정부의 영업정지 조치로 문을 닫은 모습. [중앙포토]

2017년 3월 중국 저장시 롯데마트가 중국 정부의 영업정지 조치로 문을 닫은 모습. [중앙포토]

2017년을 돌이켜보자. 사드 배치에 상주 골프장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전방위적인 압박을 당했다. 소비자 시위, 제품 납품 거부, 여기에 발전시설 압수, 매장 폐쇄 같은 조치까지 이어졌다. 버티던 롯데는 결국 중국에 투자한 자산 대부분을 헐값에 팔고 손을 털고 나와야 했다.

사드 보복 전 중국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어 외국계 톱 3에 들었던 현대차와 기아는 또 어떤가. 납품 업체를 현지 기업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가하면, 소비자 불매 운동에 교묘한 영업 방해까지 이어졌다. 이때 시작된 점유율 하락은 계속 이어지더니 지난해 2.7%까지 미끄러졌다. 올해는 1%대로 내려앉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게임사는 중국 시장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면허를 전혀 발급받지 못했고, 한국 드라마·영화는 중국 TV나 영화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당시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양국 합작 회사에까지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중국 시장에 왜 계속 매달려야 합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톱 티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되겠다면서 세계 최대인 중국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이 말은 한국 기업들이 오만가지 압박과 방해에도 그간 중국 시장 공략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이런 일련의 보복 조치는 놀랄 만큼 일사불란하게 이뤄졌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철회해 달라는 한국 기업과 정부의 거듭된 요구에 한 번도 정부 차원에서 보복 조치를 인정한 적이 없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중국은 한국 기업엔 최대의 수출 시장이다. 전체 수출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4%(5월 기준)로 해외 모든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수출 텃밭 역할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중국 수출이 너무 빠르게 줄어드는데, 중국만 한 대체시장을 아직 못 찾고 있는 것을 한국 무역의 근본적 위기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대중 수출은 지난 5월부터 꺾이면서 4개월 연속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유력하다.

꼼꼼히 살펴보면 그 원인이 더 속상하다. 5년 전 노골적인 중국 정부 보복에 밀리기 시작했던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은 이젠 남 탓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의 제품 경쟁력이나 브랜드 파워 때문에 한국 제품이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이는 한때 중국 시장을 주름잡던 국내 화장품 업체들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6월 중국 온라인 상거래 업체 징둥닷컴이 연 중국의 상반기 최대 쇼핑 행사 ‘618 쇼핑 축제’에서 한국 화장품은 10위권 내에 한 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수출기업들은 미국이 일본·대만과 함께하는 칩4(4개국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서 안 그래도 중국 정부가 보복에 나서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형국이었다. 사드 배치 때 같은 보복이 현실화되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취약해진 중국 시장에서의 한국 제품 경쟁력은 더 망가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대만을 보면 시사점이 보인다.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대만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중이지만, 대만 하이테크 제품의 중국 수출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중국 하이테크 시장에서 대만 제품은 25.2% 비중을 차지해 한국(15.9%)과 일본(7.2%)을 큰 차이로 누르고 있다(2021년 기준).

중국 보복 때도 정부와 민간이 일제히 타격을 가한 한국 제품은 자신들과 한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였다. 이러니 중국이 아쉬워하는, 자국에 꼭 필요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한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건 아니라는데 한국 경제의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