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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없앤다는데…거주자들 “살고 싶어 사는 줄 아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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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가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안대요?”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앞에서 11일 오후 젖은 가재도구를 씻던 50대 윤모씨는 전날 서울시가 발표한 ‘반지하 가구 안전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대책의 골자는 ▶지하·반지하를 주거 목적으로 짓지 못하게 법을 바꾸고 ▶10~20년 유예기간을 거쳐 기존 반지하 주택을 없애며 ▶상습침수 지역 지하·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바우처를 준다 등이다.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경기도 군포시의 한 반지하 주택 방범창이 11일 뜯겨 있다. 이곳 주민은 지난 8일 침수로 고립됐다가 경찰과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향후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경기도 군포시의 한 반지하 주택 방범창이 11일 뜯겨 있다. 이곳 주민은 지난 8일 침수로 고립됐다가 경찰과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향후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윤씨는 “공공임대주택 입주가 쉬운 것도 아니고, 그나마 살 만한 반지하를 떠나라면 어떡하냐”고 푸념했다. 윤씨는 가사도우미로 월수입 200만원 안팎. 물에 잠긴 반지하 집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반지하 주택 집주인 60대 권모씨는 “주인도 용적률을 더 올려주지 않는 이상 반지하에 세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세입자의 경우 일자리가 몰린 강남 등지에서 멀어지면 통근비용이 부담이다. 가까운 반지하를 떠나기 힘든 이유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다. 서울에 절반이 넘는 20만849가구(61.4%)가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낸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 지원 정책과제’에 따르면 수도권의 지하·반지하 집 임차가구 평균 소득은 182만원.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 소득(351만원)의 절반 미만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시 대책의 핵심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이다.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 호.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 상향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건 1669가구뿐이다. 그중 반지하는 247가구(14.8%)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반지하를 없앴더니 고시원 거주자가 늘어났다”며 “현실적 이주 대책을 설계하는 게 정책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상습수해 지역이던 중랑구 중화동을 2009년부터 재개발해 반지하 가구를 줄였다. 하지만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전에 살던 지인 중에 경기도 안양시의 셋집으로 옮기거나 아예 지방에 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70대 여성 주민은 “임대주택을 얻어 갔다는 사람은 못 봤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홈페이지에 입주 공고가 난 ‘서울송파도시형생활주택’(10년 공공임대주택)은 22.87㎡(6.9평)가 보증금 5500만원에 월 35만원이다.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 해당 지역에 살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임대주택은 청년층을 겨냥해 가족이 살기에 너무 적다”며 “반지하 가족의 선택지가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LH의 큰 적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의 걸림돌이다. LH의 2020년 부채는 129조7450억원. 공공임대주택 한 채를 지을 때마다 약 1억5000만원씩 느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형(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 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국공유지에 자체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짓지 않고 LH 등에 달성 목표치만 던지니 분양장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방향성만 제시한 것일 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구체적 실행 계획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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