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기부제, 답례품에 달렸다…지자체 ‘3만원 당근’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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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여성농업인과 함께하는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관계자들이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고 있다. [뉴스1]

충북 단양군은 내년 1월 전국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고향사랑기부제’를 앞두고 세수 확대를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다. 단양군은 인구 2만8000여 명의 작은 지자체다. 한 해 살림살이 4000억원 중 지방세 수입은 270억원(6.8%) 정도다. 직원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이 열악하다. 군(郡) 재산을 빌려주거나, 매각·시설 사용료로 받는 세외수입을 더해도 자체 재원이 늘 부족하다. 예산의 72%가 의존 재원이다.

하지만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하면, 단양군은 출향인이나 타지에 사는 사람에게 연중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취약계층 지원이나 주민 복리사업에 쓸 수 있는 예산은 늘게 된다. 단양군은 조만간 고향기부제 홍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관광지마다 홍보 팸플릿을 놓고, 기부자에게 줄 특산품이나 레포츠시설 이용권 등 답례품까지 구상 중이다.

조성우 단양군 지방소득세 팀장은 “단양 같은 시골 마을은 10억원만 더 있어도 면(面)별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다”며 “고향사랑기부제가 재정이 열악한 군 단위 지자체에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제 유인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담팀을 꾸려 모금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거나, 답례품 선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개념도. [사진 충북도]

고향사랑기부제의 근거는 지난해 10월 제정된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이다.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기부자에게 지역특산품을 제공해 지역경제도 살리려는 취지로 도입했다. 내년 1월부터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에서 동시 시행한다. 현재 법제처 심사 중인 관련법 시행령은 다음달초 공포 예정이다.

기부한도는 연 500만원이다. 주소지를 제외한 전국 지자체 어디에나 기부가 가능하다. 경기도 오산시민을 예로 들면, 오산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241개 광역·기초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다. 답례품은 기부금액의 30% 범위 내에서 줄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특산품이나 가공품, 관할구역에서 통용되는 상품권이 해당한다.

세금 혜택도 빼놓지 않았다. 10만원 이내 기부금은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10만원을 낼 경우 국세(소득세 9만900원)와 지방세(지방소득세 9100원)를 10만원 깎아주는 방식이다. 10만원을 넘기면 세액공제 혜택이 줄고, 기부금액에 비례해 자부담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10만원을 초과한 나머지 금액의 세액공제율이 16.5%로 확 낮아지기 때문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의 ‘고향납세제’와 비슷하다. 일본은 대도시권과 지방의 세수 격차를 줄이려 지방세법 개정(2008년)으로 고향납세제를 시행했다. 납세 규모를 원화로 환산하면, 첫해 865억원에서 2020년 7조1486억원으로 약 83배 증가했다.

심두섭 지방행정연구원 실장은 “일본은 고향납세제를 통해 대도시권 재정이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했다”며 “중앙정부에 세원이 많이 몰려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고향기부제를 통해 국세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재정 분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현재 답례품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대체로 지역 특산품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조정선 전북 무주군 고향사랑기부팀장은 “세제 혜택은 전국이 같지만, 답례품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 기부자의 눈에 띌 만한 품목을 선정할 예정”이라며 “지역 특산품인 사과나 천마·찰옥수수·도라지 청·떡갈비 세트 외 고액 기부자를 위한 공예품·통합관광 상품권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군부대가 있는 강원 양구군은 병사 부모를 대상으로 양구군 외박지 투어, 신혼부부 사진 촬영 티켓 등 이색 답례품을 준비 중이다. 최근 고향사랑기부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전남 영암군은 영암 민속씨름단을 활용한 답례품 개발을 추진한다. 곽경애 영암군 세정팀장은 “달맞이 쌀이나 황토 고구마 등 농산물 외에 유튜브와 방송 출연으로 인기가 있는 영암 민속씨름단 선수들과 협업해 기념품 등을 제공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지역이 많은 인천시는 지역화폐 ‘이음카드’를 답례품으로 고려하고 있다. 전남도는 영광 굴비·모시 송편, 함평 장어 등 시군별로 특산품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전담팀 구성과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다. 전북도는 도와 시군 합동 TF를 구성해 모금 홍보반, 답례품 지원, 기금 운영 등 분과로 나눠 대응하고 있다. 전남도는 지난 1월 본청 직원 7명으로 구성된 고향사랑추진단을 꾸렸다. 울산 울주군 전담인력 배치하고, 경북 군위군은 농협중앙회와 답례품 발굴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충북도는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지난 5월부터 2달간 진행했다. 도민·출향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기부 의사와 답례품 선호도, 희망 기부금액 등을 조사했다. 강원도는 답례품 개발과 기금 모금을 위한 시뮬레이션, 도와 시·군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연구 용역 결과를 9월께 내놓을 예정이다. 인천시도 최근 인천연구원에 관련 정책 연구를 맡겼다. 전남 해남군은 상금 300만원을 걸고 이달까지 기부금 활용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역 인지도나 특산물 인기 여부에 따라 되레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경제학과)는 “일본에 비해 세금 감면 혜택이 적어 기부자의 ‘애향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며 “세액공제나 답례품 비중을 높이는 등 기부자에게 혜택을 더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양·무주·양구=최종권·김준희·박진호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